1-4 세계경전을 읽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다섯 가지 한계
세계경전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시도입니다. 1784페이지(세계경전2 한글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안에 세계 주요 종교의 경전들이 5대 주제, 161개 소주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1991년 국제종교재단이 출판한 이 책은 종교 간 대화와 화합을 위한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그 가치만큼이나 한계를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한계를 알고 읽는 독서와 모르고 읽는 독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왜 가치를 말하기 전에 한계를 먼저 이야기하는가
세계경전의 가치를 진심으로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그 한계를 정직하게 말합니다. 어떤 책이든 완벽할 수 없으며, 특히 다종교 경전을 하나로 엮은 선집은 더욱 그렇습니다. 세계경전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면 비판적 독자가 되지 못합니다. 한계를 인식하면 그 한계를 보완하면서 읽을 수 있고, 경문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한계를 아는 것이 더 풍부한 독서 경험을 만듭니다.
첫 번째 한계, 접근성의 벽
세계경전은 900페이지에 달합니다. 5대 주제 아래 161개 소주제가 배치되고, 각 소주제마다 수십 개의 짧은 경문들이 나열됩니다. 이 구조는 학술 연구자에게는 풍부한 자료가 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입니다. 단순히 분량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문들이 맥락 없이 나열되어 있어, 각 경문이 왜 이 소주제에 배치되었는지, 그 경문이 해당 종교에서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설명하는 해설이 거의 없습니다. 독자는 경문과 경문 사이의 관계를 스스로 파악해야 하며, 이는 종교적 배경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 큰 장벽이 됩니다.
두 번째 한계, 맥락의 단절
세계경전에 실린 경문들은 대부분 3줄에서 10줄 정도의 짧은 발췌문입니다. 발췌는 본질적으로 원래 맥락의 일부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전의 번역은 단순한 의미의 전달 차원을 넘어서 특정 종교의 개념과 감수성까지도 전달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런데 짧은 발췌는 이러한 감수성과 맥락을 더욱 축소시킵니다. 맥락의 단절은 번역 단계에서도, 발췌 단계에서도 동시에 발생합니다. 이 이중의 단절을 의식하며 읽어야 합니다. 독자는 관심 있는 경문을 만나면 반드시 해당 종교의 경전으로 돌아가서 더 넓은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세 번째 한계, 편집 관점의 투명성
세계경전은 국제종교재단이 편집했습니다. 편집자들의 신학적 배경이 경문의 선택과 배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40인 편집자문위원회가 다종교적 합의를 이루려 했지만, 그 회의 참가자들도 특정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세계경전은 공통점을 찾는 방향으로 경문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편집의 의도적 선택이며, 종교 화합을 촉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각 종교의 완전한 그림을 왜곡한다는 비판도 가능합니다. 독자는 이 편집 관점을 의식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중립적인 편집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선택에는 관점이 개입됩니다.
네 번째 한계, 배타적 선언의 회피
세계경전은 공통점을 강조하는 선집입니다. 각 종교의 배타적 선언들은 강조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사도행전의 선언, 이슬람 외의 종교를 따르는 자는 저세상에서 패자가 될 것이라는 꾸란의 구절은 세계경전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각 종교의 내부에는 공통점을 향하는 경문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타적 선언들도 있습니다. 그것들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편집은 정직하지 않습니다. 불편한 차이들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야 합니다. 차이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너머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진정한 대화입니다.
다섯 번째 한계, 현대 이슈의 부재
세계경전은 199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인공지능, 기후위기, 젠더, 다문화 사회, 디지털 기술과 같은 현대적 이슈들은 세계경전의 161개 소주제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1991년이라는 시대적 한계입니다. 경문들은 고전이지만, 그 경문들이 현대의 새로운 상황에 어떻게 응답하는지는 독자가 해석하고 연결해야 합니다. 경전의 지혜를 현대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경전이 주는 원리를 어떻게 오늘날의 복잡한 윤리적 문제에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
다섯 가지 한계를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세계경전을 읽어야 하는가. 불완전한 지도가 지도 없음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세계경전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규모와 깊이로 인류의 영적 유산을 한 자리에 모은 시도는 역사상 없었습니다. 세계경전을 구상하고 출판한 것 자체가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책은 종교 간 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경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해설과 맥락이 필요합니다. 각 경문의 역사적·신학적 맥락을 제공하고, 경문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해설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경전의 편집 관점을 투명하게 밝히고, 필요한 경우 다른 관점도 병렬 제시해야 합니다. 불편한 차이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야 합니다. 차이 위에서 찾는 공통점이 더 깊습니다. 현대적 상황에서 경문의 의미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연결해야 합니다.
세계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 교훈을 읽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영적 여정이 남긴 흔적을 읽는 것입니다. 한계를 알고 읽으면, 경문들이 다르게 읽힙니다.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고,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이 진정한 독서입니다.
권상기
2026.07.11
1-3 27개 종교가 하나의 책에서 만나다 — 세계경전이 밝힌 인류 공통의 도덕 언어
종교 간 대화는 늘 언어의 문제에 부딪힙니다.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으면 기독교의 언어로 세상을 보게 되고, 불교인이 불경을 읽으면 불교의 세계관에 머물게 됩니다. 서로 다른 경전을 읽는 사람들은 공통의 언어를 찾기 어렵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평행선을 달립니다. 그렇다면 모든 종교가 함께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세계경전은 바로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 책입니다.
모든 종교가 발견한 하나의 진리, 황금률
세계경전이 밝혀낸 가장 놀라운 사실은 황금률의 보편성입니다. 황금률은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도덕적 원칙인데, 놀랍게도 기독교, 이슬람, 불교, 유교, 힌두교, 유대교, 아프리카 전통 종교 등 최소 7개 이상의 종교 전통이 거의 동일한 내용의 황금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서로 교류 없이 독립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입니다.
기독교는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칩니다. 이슬람의 하디스는 "자신을 위해 바라는 것을 형제를 위해 바라지 않는다면 신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불교 우다나바르가는 "자신이 남에게 행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유교의 논어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즉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힌두교의 마하바라타는 "다른 이를 상처 입히지 말라, 당신 자신이 상처 입고 싶지 않은 것처럼"이라 말하고, 유대교 탈무드는 "당신에게 미운 것을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전 토라다"라고 가르칩니다. 아프리카 요루바족 전통은 "뾰족한 막대기로 어린 새를 찌르려 하는 자는 먼저 자신을 찔러 얼마나 아픈지 느껴보아야 한다"는 생생한 표현으로 같은 원리를 전합니다.
이 일곱 문장을 나란히 읽으면 경이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종교는 다르고 경전의 언어도 다르지만, 말하는 내용은 하나입니다. 이 공통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도덕적 직관이 모든 문명권에서 독립적으로 발현된 결과입니다. 세계경전이 27개 종교 전통을 나란히 배치했을 때 드러난 가장 강력한 발견이 바로 이것입니다.
편집 방식으로 종교의 위계를 거부하다
종교사는 오랫동안 위계를 당연하게 여겨왔습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자신의 가르침이 가장 진실하고 다른 종교는 불완전하거나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세계경전은 이러한 위계를 편집 방식으로 거부합니다. 어떤 종교도 우위에 두지 않고, 힌두교 경문과 꾸란, 성경과 불경이 같은 권위로 나란히 배치됩니다.
진성배 교수는 이러한 배치가 단순한 편집 기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세계경전을 읽는 사람은 자기 종교의 존엄성만큼 상대방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며, 종교가 가지는 깊이의 차원에서 겸허해지고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위계 없는 배치는 곧 신앙 체험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한스 큉의 세계윤리 프로젝트는 종교 간 대화를 위해서는 공통의 텍스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어느 한 종교의 경전으로 대화하면 그 종교의 언어에 갇히게 되지만, 세계경전은 모든 종교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통의 장을 제공합니다. 이것이 세계경전이 가진 혁명적인 가치입니다.
50년 종교화합운동의 실천적 결실
세계경전을 단순한 학술 편집물로 보면 그 진정한 가치를 반쪽만 보는 것입니다. 이 책은 50년에 걸친 종교화합 운동의 결실입니다. 1966년 초교파운동에서 시작하여 1990년 시리아 이슬람 지도자 40일 수련, 2002년 초종교 성직자 축복결혼식, 2003년 예루살렘 평화대행진까지, 수많은 실천적 운동이 세계경전의 배경을 이룹니다.
말씀선집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종교인으로서 우리가 상호간 싸움과 적대행위를 종식시키지 않는다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이 선언이 바로 세계경전 편찬의 실천적 동기입니다. 텍스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텍스트가 없으면 실천이 흩어진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 책이 탄생했습니다.
세계경전은 종교 간 갈등이 첨예한 현대 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경전을 읽지만, 그 경전들이 말하는 핵심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황금률이라는 공통의 도덕 언어를 발견한 순간, 우리는 종교의 차이를 넘어 인류 공통의 윤리적 기반 위에 설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라 경험하는 책입니다. 27개 종교 전통이 동등하게 배치된 페이지를 넘기며, 독자는 자신의 종교가 유일한 진리가 아니라 거대한 진리의 교향곡 중 하나의 악기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겸손과 존중, 화합으로 이어집니다. 세계경전이 혁명적인 이유는 바로 이 변화의 힘에 있습니다.
권상기
2026.07.11
1-2 세계경전의 숨겨진 설계, 161개 소주제가 그리는 영적 지도
1784페이지 속에 담긴 정밀한 구조
세계경전을 처음 펼치는 독자들은 종종 혼란스러워합니다. 힌두교 경문 바로 다음에 꾸란이 나오고, 유교 경전 뒤에 기독교 성경이 이어지며, 아프리카 전통종교와 불교가 섞여 있습니다. 마치 종교적 텍스트들을 무작위로 섞어놓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겉보기 혼돈 속에는 매우 정밀한 설계가 숨어 있습니다.
세계경전은 단순한 경문 모음집이 아닙니다. 인간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여 가장 넓은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정교한 조직신학적 배열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책은 5대 주제 아래 161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소주제는 인간의 영적 여정을 따라 체계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는 4부 구조
세계경전의 구조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1부 하나님과 창조는 궁극적 실재인 신의 본질, 진리와 우주 법칙, 인생의 목적, 영계와 사후 세계 등 가장 근본적인 형이상학적 질문들을 다룹니다. "신이 있다면 어떤 분인가, 우주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제2부 죄와 구원은 악과 죄의 기원, 구원과 해방의 길, 종교의 역할, 섭리역사, 종말과 메시아를 다룹니다. 인간의 결함과 그 치유를 탐구하는 이 부분은 종교 간 차이가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는 곳이면서, 동시에 가장 깊은 공통점도 발견되는 영역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다르지만, 구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모든 종교가 공유합니다.
제3부 인생의 여정은 성장과 책임, 도덕성, 사랑, 지혜, 신앙, 기도와 숭배, 복종과 희생, 겸손 등 개인의 실천적 삶을 다룹니다. 흥미롭게도 서로 다른 신학 체계를 가진 종교들이 "자제하라, 진실하라, 사랑하라, 겸손하라"라는 실천 윤리에서는 거의 동일한 가르침을 제시합니다.
제4부 가정과 사회는 가정, 사회, 지도력, 평화 등 관계와 공동체의 영역을 다룹니다. 개인에서 시작하여 가정으로, 가정에서 사회로, 사회에서 세계로 확장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가장 내면적이고 수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하여, 가장 외면적이고 수평적인 사회와 세계로 나아갑니다.
동서양 지혜 전통의 보편적 패턴
이 구조는 결코 임의적이지 않습니다. 동서양 모든 지혜 전통이 공유하는 패턴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와 정확히 같은 방향입니다.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마침내 천하를 평정한다는 이 원칙은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하여 세계로 확장되는 영적 여정을 보여줍니다.
불교의 팔정도 역시 정견(正見), 즉 올바른 견해에서 시작하여 정업(正業), 올바른 행위로 확장됩니다. 세계경전의 4부 구조가 이 보편적 지혜의 패턴을 충실히 따른 것입니다. 안에서 밖으로, 수직에서 수평으로 흐르는 이 구조는 단순한 편집상의 선택이 아니라, 인간 영성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반영합니다.
종교별이 아닌 주제별 배열의 혁명
세계경전의 가장 혁명적인 선택은 종교별 배열을 거부한 것입니다. "기독교 경전 모음, 이슬람 경전 모음, 불교 경전 모음"이라는 전통적 방식 대신, 주제를 먼저 정하고 그 주제에 대해 27개 종교 전통이 각자 어떻게 말하는지를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이 선택의 효과는 강력합니다.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 기독교의 아가페, 불교의 카루나, 이슬람의 라흐마, 유교의 인(仁)이 나란히 놓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이것들이 다 같은 말인가?" 이 질문이 바로 종교화합의 첫걸음입니다. 차이가 아니라 공통점을 먼저 보게 만드는 배열이 독자의 인식을 바꿉니다.
니니안 스마트 교수는 세계경전의 유용성을 네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종교와 영성에 순수한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자극을 주고, 비교종교학이나 종교사 학도의 교재로 사용될 수 있으며, 특정 종교 전문가들에게도 좋은 참고서가 되고, 모든 영적인 길을 존중하는 정신을 고취시킵니다. 주제별 배열이 이 네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 있게 합니다.
말씀선집이 보여주는 통일원리의 위치
각 장의 경문들 끝에는 말씀선집이라는 표제 아래 문선명 선생의 강연 발췌문이 배치됩니다. 이것은 세계경전의 가장 독특한 요소입니다. 단순한 편자의 해설을 넘어서, 세계경전의 맥락 안에 통일원리가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학적 해석입니다.
"종교의 내용을 보고는 그 단계를 구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용은 다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 하나님을 절대 주인으로 삼으라는 말, 인간을 사랑하라는 말, 어머니 아버지를 공경하라는 말... 이것은 어느 종교든지 다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증언은 세계경전이 발견한 핵심을 요약합니다. 종교들은 가장 깊은 차원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선집의 배치는 세계경전이 단순한 학술적 비교종교 연구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종교화합을 위한 신학적 프로젝트입니다. 161개 소주제 각각에서 세계 종교들의 공통된 가르침을 확인하고, 그 가르침이 통일원리 안에서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제시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여러 경전들에서 그 정수를 받아들이며, 모든 종교에서 단지 장점만 본다는 힌두교 격언이 세계경전 전체의 정신을 대변합니다.
권상기
2026.07.11
1-1 세계경전의 탄생, 26년의 여정 — 종교 간 갈등을 넘어선 역사적 실험
하나의 경전이 없기에 종교는 싸운다
1985년 11월 15일, 미국 뉴저지의 한 호텔 회의실에 전례 없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성경, 꾸란, 베다, 불경, 논어, 탈무드가 나란히 놓였습니다. 서로 다른 신을 향해 씌어진 책들이 같은 공간에서 호흡했습니다. 국제종교재단이 주최한 세계종교의회 창립총회였습니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유대교, 유교, 신도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7일간 모여 하나의 질문을 놓고 토론했습니다. 모든 종교의 경전에서 공통으로 담긴 진리를 뽑아 하나의 선집을 만들 수 있는가?
이 물음은 단순한 학술적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문선명 선생이 오랫동안 품어온 진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종교들이 싸우는 것은 하나의 경전이 없기 때문이다." 각 종교는 자기 경전만을 유일한 진리로 여기고, 다른 종교의 경전은 읽지 않습니다. 읽지 않으니 모르고, 모르니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니 공격합니다. 해법은 명확했습니다. 읽게 하는 것, 그리고 읽게 하려면 손에 들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필요했습니다.
1985년 뉴저지 회의가 혁명적이었던 이유
역사적으로 종교 경전들은 경쟁 관계였습니다. 기독교는 구약을 완성됐다고 보고, 이슬람은 성경이 변질됐다고 말합니다. 힌두교의 다신론적 세계관은 유일신 전통과 충돌하고, 불교는 신 개념 자체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이 경전들을 나란히 놓는다는 것은 수천 년간 쌓인 긴장을 한 자리에 불러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문선명 선생은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경전 편찬의 정신적 기초를 명확히 했습니다. "본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종파주의자가 아니십니다. 지엽적인 교리이론에 얽매인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는 민족이나 피부색, 국가나 문화 전통, 동서양의 벽도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종단 간의 대화와 화합을 통하여 평화로운 하나의 이상세계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경전 편찬의 신학적 토대였습니다.
26년의 여정, 연구실이 아닌 현장에서 쌓인 결과
세계경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1966년부터 1991년까지 26년에 걸친 실천과 축적의 결과였습니다. 뿌리는 1950년대 한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6년 서울에서 통일교, 장로교, 감리교가 연합부흥회를 열었고, 교파 간 화합의 첫 공식 기구가 창설됐습니다. 1970년대에는 불교, 유교, 기독교, 천도교 등 7대 종교와 공식 연대를 맺으며 초종교 운동의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1983년 뉴욕에서 국제종교재단이 창설되면서 세계경전 편찬의 공식 기반이 마련됐고, 1985년 뉴저지 회의에서 편찬이 결의됐습니다. 이후 1985년부터 1991년까지 국제 공동회의가 4회 개최됐고, 세계 각지의 종교 학자와 문헌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1991년 마침내 세계경전 영문판이 출간됐습니다.
영문판 세계경전에 수록된 종교 전통은 27개에 달합니다. 기독교, 이슬람, 불교, 힌두교, 유교, 도교의 5대 종교를 비롯하여 유대교, 자이나교, 시크교, 신도, 조로아스터교, 바하이교, 아프리카 전통종교, 미주 원주민 종교, 마오리 전통종교 등이 포함됐습니다. 인용된 경전 수는 264가지에 이릅니다. 편집자문위원으로는 비교종교학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니니안 스마트 교수와 휴스턴 스미스 교수를 필두로 총 40인의 종교 문헌학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한문, 히브리어, 그리스어 등 각 종교 경전의 원전 언어를 해독하고, 경문 선정과 편집 과정에서 전문성을 검증했습니다.
다양성은 필연이지만 갈등은 불필요하다
세계경전 편찬의 신학적 동기를 이해하려면 하나의 진단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어느 한 종교가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변하는 일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종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견해들은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이 문장이 세계경전의 존재 이유입니다.
종교의 다양성은 필연입니다. 각 종교가 신의 다른 측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등은 불필요합니다. 그 다양성을 이해하면 갈등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경전은 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입니다.
진성배 선문대 교수는 세계경전의 편찬 목적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개별 종교의 절대적 신념이나 유일하다고 믿는 신앙형태를 양보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한 존경과 관용을 고취하여 자신의 신앙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종교 본래의 보편적 메시지를 공유하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계경전은 자기 종교를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자기 종교를 더 깊게 만드는 책입니다.
한국에서의 두 번째 탄생, 1994년 한글판
영문판에 이어 1992년 한국어 번역이 시작됐고, 1994년 5월 1일 한글판 세계경전이 출판됐습니다. 한글판 편찬 과정은 영문판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습니다. 번역자 선정 기준이 세 가지였습니다. 해당 종교의 깊은 이해, 경전 원전 숙지, 영어와 한국어 모두의 능숙한 구사였습니다. 영어 번역에만 의존하면 이중 오역이 발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글판 세계경전에는 한국의 9개 종단 대표자들의 추천이 실렸습니다. 한국불교 태고종, 대한예수교장로회 연합총회, 한국 이슬람교, 성균관, 대종교, 천도교, 증산교 본부,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국종교협의회가 추천 서명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다종교 공존 전통이 세계경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의 증거였습니다.
세계경전이 남긴 질문
세계경전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열린 질문입니다. 당신은 자기 종교의 경전 외에 다른 종교의 경전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27개 종교 전통을 동등하게 배치했다는 것이 당신에게 어떻게 느껴집니까? 어느 한 종교도 신을 완전하게 대변하지 못한다는 전제에 동의합니까?
26년의 여정이 보여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세계경전은 연구실의 산물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실천과 만남이 쌓여서 가능해진 것입니다. 한국에서 교파 간 화합운동으로 시작해서, 7대 종교 간 연대로 확장되고, 마침내 전 세계 27개 종교 전통의 경문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으로 완성됐습니다. 읽지 않으니 모르고, 모르니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니 공격한다는 진단에서 시작된 이 책은, 읽게 하는 것이 평화의 시작이라는 믿음의 결실입니다.
권상기
2026.07.11
2-1 신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 세계경전으로 읽는 13가지 신의 속성과 종교 간 대화의 가능성
2019년 아부다비, 교황과 대이맘이 던진 질문
2019년 2월 아부다비에서 역사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와 이슬람 최고 권위기관 알-아즈하르의 대이맘 아흐마드 알-타예브가 '인류 형제애 선언'에 공동 서명했습니다.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두 분이 믿는 신은 같은 신입니까?" 교황은 "하나님은 하나입니다"라고 답했고, 대이맘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같은 신일까요? 이슬람은 삼위일체를 다신론으로 간주합니다. 힌두교의 브라흐만, 불교의 불성, 도교의 도는 과연 '신'이라는 범주에 들어올까요? 불교는 인격신 개념 자체를 거부하지 않습니까?
세계경전은 이 질문에 성급하게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40여 개 종교의 경전이 신에 대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먼저 나란히 펼쳐놓습니다. 비교하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둡니다.
어떻게 신을 알 수 있는가 — 인식의 세 가지 길
세계경전 제1장은 13개의 소주제로 신의 다양한 속성들을 다룹니다. 첫 번째 소주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입니다. 신의 존재를 묻기 전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신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서양 철학 전통에서는 이성의 길과 계시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계경전은 더 다양한 경로를 제시합니다. 첫째는 피조물을 통한 인식입니다. 로마서는 "창조물을 통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이 분명히 알려져 있다"고 말합니다. 꾸란도 "하나님은 대지 위에서, 그리고 인간의 영혼 속에서 예증들을 보여주신다"고 합니다. 자연 세계가 신의 손길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면을 통한 인식입니다. 힌두교 우파니샤드의 명상 전통, 도교의 직관적 체험이 이 경로에 속합니다. 신이 바깥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초자연적 계시의 길입니다. 예언자들과 성인들이 직접 체험한 신과의 만남입니다.
17세기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죽을 때까지 코트 안감에 꿰매고 다녔던 메모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철학자와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닌. 확신. 확신. 느낌. 기쁨. 평화." 파스칼이 발견한 것처럼, 신은 이성이 아니라 심정으로 감지됩니다.
한 분 하나님 — 가장 뜨거운 신학적 쟁점
두 번째 소주제 '한 분 하나님'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게 한 여덟 글자입니다. 7세기 이슬람이 기독교 세계와 만났을 때 첫 번째 충돌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무슬림들이 보기에 삼위일체론은 명백한 다신론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세 위격이지만 하나의 본체'라고 답했지만, 이슬람은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힌두교의 대답입니다. 수백만의 신들이 있지만, 그 모든 신들은 하나의 절대 실재 브라흐만의 현현이라는 것입니다. 리그베다는 이미 기원전 1500년경 "오직 하나뿐인 이, 현자들은 그를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고 선언했습니다. 3,500년 전 인도의 한 시인이 종교다원주의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말씀선집은 이 긴장의 핵심을 명쾌하게 짚습니다. 각 종교가 절대자를 서로 별개의 존재로 보기 때문에 분쟁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각 종교는 신의 한 속성, 한 측면을 파악한 것이며, 그것들을 통합해야 신의 전모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타협이 아닙니다. 더 높은 차원의 신학입니다.
말로 담을 수 없는 신 — 무형과 초월의 역설
신에 관해 말하려는 순간, 언어는 실패합니다. 신을 '전능하다'고 말하는 순간, 신을 '전능함'이라는 개념의 틀에 가두는 것이 아닐까요? 세 번째와 네 번째 소주제 '무형과 신비', '초월적 실재'는 바로 이 문제를 다룹니다.
도덕경의 첫 문장이 이것을 압축합니다. "말로 표상해 낼 수 있는 도는 항구불변의 본연의 도가 아니다." 가장 심오한 진실은 말해질 수 없습니다. 꾸란은 "어떤 시각으로도 그분을 인식할 수 없지만 그분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있습니다. 규정되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나 있습니다.
말씀선집이 이 역설에 가장 인간적인 언어를 입힙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눈앞에 나타나 지적하고 간섭하신다면, 우리는 신경쇠약에 걸려 하루도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신이 보이지 않는 것은 신비가 아니라 사랑의 배려라는 것입니다.
전능과 전지, 그리고 인내의 신학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소주제는 '주권과 전능', '전지성과 편재성'을 다룹니다. 철학자들이 자주 이의를 제기하는 속성들입니다. '전능한 신이 자신도 들지 못할 만큼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있는가?' 같은 역설적 질문이 제기됩니다. 전능하고 전지하다면 왜 악을 허용하는가라는 물음도 있습니다.
말씀선집이 독특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전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참을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을 참으시는가를 다룹니다. "하나님은 한번 결심하면 몇 천 년이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전능은 무엇이든 즉시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원칙을 영원히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인내와 자기절제가 오히려 더 강한 힘이라는 것입니다.
꾸란의 "하나님은 인간의 목에 있는 혈관보다 가까이 있다"는 표현은 편재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입니다.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신이 동시에 내 목의 혈관보다 가깝습니다. 이 역설이 이슬람 수피 신비주의의 핵심 명상 주제가 되었습니다.
신은 어디에 있는가 — 내재와 마음 속에 머무름
일곱 번째 소주제는 '내재와 마음 속에 머무름'입니다. 신학에서 초월과 내재의 긴장은 가장 오래되고 깊은 것 중 하나입니다. 초월만 강조하면 신은 멀어집니다. 내재만 강조하면 범신론으로 흐릅니다.
각 종교 전통이 이미 오래전에 이 해법을 각자의 방식으로 찾았습니다. 시크교 경전은 말합니다. "향기가 꽃 속에 머물듯, 사물이 거울 속에 비쳐 있듯, 신이 만유에 거하나니, 그대 안에서 신을 구하라." 불교 선종은 "바로 이 마음이 부처"라고 선언합니다. 기독교 요한복음은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말씀선집의 증언이 가장 강렬합니다. "본인은 하나님의 맥박을 듣고 삽니다. 하나님과 호흡을 같이하며 하나님의 체온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맥박, 호흡, 체온. 이보다 더 구체적인 내재의 표현은 없습니다.
불변과 영원, 그리고 최초의 원인
여덟 번째부터 열 번째 소주제는 '불변과 영원', '최초의 원인', '하나님의 선'을 다룹니다. 불변하고 영원한 존재가 우주의 최초 원인이며, 그 원인이 선하기 때문에 창조된 세계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논리입니다.
신의 불변성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후회했다'고 말하는 구절과 긴장을 일으킵니다. 말씀선집이 이 긴장을 독창적으로 해결합니다. 신의 불변성을 수동적인 정지 상태가 아니라 능동적인 신의(信義)로 재해석합니다. 신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약속을 영원히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계적 불변성입니다.
마태복음은 신의 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비추어 주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신의 선은 보상과 처벌의 윤리가 아닙니다. 선하든 악하든 구별 없이 내리쬐는 햇빛처럼 무조건적입니다.
신성한 사랑과 자비 — 모든 전통이 동의하는 유일한 속성
열한 번째 소주제 '신성한 사랑과 자비'는 13개 소주제 중 가장 방대하게 다루어집니다. 이것이 모든 종교 전통에서 신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으로 동의하는 유일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신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이 사랑하고 자비롭다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주요 종교가 동의합니다.
이슬람 무슬림들이 기도를 시작할 때 반드시 외우는 구절이 '비스밀라히 르-라흐마니 르-라힘' — '자비롭고 자비를 베푸시는 알라의 이름으로'입니다. 하루 다섯 번 기도가 모두 자비로운 신의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불교는 인격신을 인정하지 않지만 '대비심(大悲心)'은 보살 수행의 핵심입니다.
힌두교 바가바드기타의 경문이 혁명적입니다. "사랑함으로써 내가 누구인지를 진실로 알게 된다." 신 인식의 방법으로 사랑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논리로 신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랑이 신을 아는 가장 깊은 방법입니다.
말씀선집이 이것을 가장 실천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위해 살려고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창조의 동기로 이어집니다. "하나님도 역시 혼자 있으면 사랑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지창조의 동기, 알파적 기원도 사랑입니다."
창조자 — 사랑 때문에 세계를 만들었다
열두 번째 소주제는 '창조자'입니다. 창조론은 종교 간 가장 깊은 신학적 차이가 드러나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창조의 방식보다 더 근본적인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창조의 동기입니다. 무엇을 위해 신은 세계를 만들었는가?
창세기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합니다. 기쁨입니다. 이슬람 하디스는 '나는 숨겨진 보물이니, 나를 알리기 위해 창조했다'고 말합니다. 자기 표현입니다. 힌두교는 '브라흐마의 창조는 유희다'라고 말합니다. 넘쳐흐르는 풍요로움입니다. 플라톤은 신이 창조하는 이유를 '질투 없는 선의'라고 했습니다.
이 다양한 창조 동기들이 가리키는 하나의 방향이 있습니다. 창조는 강요가 아니었습니다. 신은 창조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원함의 이름이 각 전통에서 다르게 불립니다. 그러나 방향은 같습니다.
하늘 부모 — 지식에서 관계로, 경외에서 친밀함으로
마지막 소주제는 '하늘 부모'입니다. 이 장의 첫 번째 소주제가 '하나님에 관한 지식'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이 '하늘 부모'로 끝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식에서 관계로, 신학에서 심정으로, 경외에서 친밀함으로의 여정입니다.
신을 '부모'로 부르는 것은 모든 종교 전통에서 나타납니다. 기독교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힌두교에서 크리슈나는 "나는 이 세상의 아버지요 어머니다"라고 선언합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모든 인간 관계 중 가장 무조건적인 사랑이 작동하는 관계입니다.
말씀선집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참아버지이시면서 동시에 참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부성(父性)과 모성(母性) — 이 두 사랑의 형태가 모두 신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강한 정의와 어머니의 부드러운 자비가 신 안에서 하나로 통합됩니다.
이 장 전체를 돌아보면 1번에서 '어떻게 신을 아는가'를 물었고, 13번에서 그 앎의 최종 형태가 무엇인지를 답합니다. 신을 가장 깊이 아는 것은 신을 부모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신학적 지식이 아니라 심정적 관계. 이것이 40여 개 종교가 그 모든 다양성 속에서도 공통으로 가리키는 방향입니다.
권상기
202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