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신통일세계의 청사진: 공생·공영·공의주의
지은이 : 권상기 | 지면 : 272쪽 | 판형 : 신국판 | 가격 : 19,000원ISBN: 979-11-997671-1-9 (03290)
길 잃은 문명, 그 고통의 역사를 넘어신통일세계의 아침을 열며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신 과학기술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연결되고,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며 우주를 탐사하는 경이로운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대인들의 내면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우울과 불안, 그리고 고독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길은 찾아냈지만, 정작 이웃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내전과 학살을 멈추는 길은 찾지 못했습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극심한 양극화, 이념과 성별을 둘러싼 증오, 해체되어 가는 가정, 그리고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기후 위기 앞에서 현대 문명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질병과 기아라는 외적 빈곤은 어느 정도 극복했을지 모르나, 삶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영적·철학적 빈곤’은 오히려 더 깊어진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거대한 문명의 진보 속에서도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일까요?
근대 이후 인류는 이 고통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종교 대신 ‘인간의 이성’과 ‘과학’이라는 새로운 신(神)을 선택했습니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이 모든 무지와 폭력을 끝내고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며 인간 스스로가 초인이 되어 운명을 개척해야 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이성을 맹신한 결과는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였습니다. 나아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로 대표되는 유물사관은 인간의 모든 불행이 불평등한 경제 구조(물질)에 있다고 믿고 폭력적인 계급 투쟁을 선동했습니다. 그들은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조롱하며 공산주의 지상 낙원을 약속했지만, 결과는 1억 명이 넘는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체주의의 억압뿐이었습니다. 세속 철학과 사상들이 이토록 처참하게 파산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그들은 인간을 이기심으로 가득 찬 ‘타락한 존재(원죄)’라는 실존적 사실을 외면한 채, 인간을 단지 이성적 기계나 경제적 부속품으로만 취급했기 때문입니다. 독이 든 뿌리를 그대로 둔 채 가지(사회 제도)만 쳐낸다고 해서 결코 쓴 열매가 단 열매로 바뀔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인류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기독교를 비롯한 전통 종교는 왜 이 위기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기독교는 지난 2천 년 동안 십자가의 대속과 사랑을 전하며 인류 문명 발전에 위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지성이 발달함에 따라, 낡은 문자주의와 배타적인 교리에 갇힌 신학은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과 자비의 아버지가 아니라, 한 번의 불순종(선악과)으로 전 인류를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 넣고, 마지막 날에는 자신이 창조한 지구를 불태워 멸망시키는 무자비한 ‘심판관’으로 오해하게 만든 낡은 종말론과 예정설이 대표적입니다. 이러한 교리 속에서 신앙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개척자가 되기보다는, 휴거(Rapture)를 통해 하늘로 도피하려는 기복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우리 교단에만 구원이 있다”는 배타적 도그마는 종교를 평화의 매개체가 아니라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과 테러의 원인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과학과 종교가 분열하고, 이웃 종교를 악마화하는 편협한 신학으로는 전 지구적인 위기를 결코 돌파할 수 없습니다.
이제 인류에게는 파산한 유물론과 낡은 기성 신학의 한계를 동시에 뛰어넘어, 과학과 종교, 동양과 서양, 그리고 분열된 인간의 마음과 몸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새로운 진리의 나침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혁명적이고도 따뜻한 나침반인 ‘통일원리(Divine Principle)’를 세상에 제시하고자 합니다.
통일원리의 가장 위대한 철학적 성취는, 우주의 근원적 창조주를 두려운 심판관이나 차가운 지성(제1원인자)이 아니라, 끊을 수 없는 혈통으로 인류를 품어 안으시는 ‘하늘부모님(Heavenly Parent)’으로 재발견한 데 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고 움직이는 가장 근원적인 힘은 권력이나 이성이 아니라, 대상을 향해 무한히 사랑을 베풀고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끓어오르는 충동, 즉 ‘심정(Heart)’입니다.
인류의 비극(타락)은 단순히 과일을 훔쳐 먹은 불순종이 아니라, 부모인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기적인 거짓 사랑(사탄)과 핏줄을 맺은 ‘사랑의 궤도 이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인류 역사란 죄인을 벌하는 재판관의 기록이 아니라, 집 나간 자식을 찾아 수천 년을 맨발로 헤매며 피눈물을 흘리신 ‘어머니 하나님의 처절한 복귀의 서사시’가 됩니다. 이 위대한 ‘심정’의 관점을 획득할 때, 기독교 신학이 수백 년간 풀지 못했던 선악과의 신비, 예정론의 모순, 십자가의 뼈아픈 진실이 거대한 퍼즐처럼 완벽하게 맞추어집니다.
그리고 통일원리는 온 인류가 차별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상 공동체 사회, 즉 ‘공생·공영·공의주의’의 실체적 청사진을 세상 앞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공생·공영·공의주의야말로 남북한 양 체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것은 물론, 참사랑의 남북공동체를 이루는 제3의 유일한 통일방안입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자유 남용과 사회주의의 일률적 평등의 문제를 하늘부모님의 참사랑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념적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는 머지않아 공생·공영·공의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공생의 경제공동체, 공영의 정치공동체, 그리고 공의의 윤리공동체가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은 독자 여러분을 매우 도전적이고 지적인 여정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제1부(이론편)에서는 창조, 타락, 구원, 역사에 이르는 통일원리의 핵심 뼈대를 기존 기독교 신학과 치열하게 대조(비교 변증)하며 풀어낼 것입니다. 왜 구원의 최종 목적지가 개인의 ‘십자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원죄의 핏줄을 씻어내고 온전한 사랑을 꽃피우는 부부와 ‘참가정(True Family)’의 완성, 즉 축복(Blessing)으로 이어져야만 하는지를 이성적이고 설득력 있게 논증할 것입니다.
제2부(역사편)에서는 이러한 원리적 사관을 바탕으로 인류가 이상세계를 쟁취하기 위해 걸어온 실제 역사적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복지국가의 실험, 그리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처절한 사상적 충돌을 해부하며, 왜 이 모든 세속적 실험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본적 한계를 명확히 짚어낼 것입니다.제3부(비전편)에서는 참사랑의 이상세계를 실체적으로 이루기 위한 비전과 그 이념으로서의 공생・공영・공의주의에 대해서, 제4부(실천편)에서는 이상세계의 비전이 실현된 신통일세계의 실체적 안착을 위한 도전과 앞으로 우리 인류의 사명에 대해서 다루게 됩니다.
우리는 멸망을 기다리는 고아들이 아닙니다. 하늘부모님의 거룩한 자유의지를 상속받아, 잃어버린 에덴동산(신통일세계)을 이 현실의 땅 위에 직접 재건해야 할 위대한 상속자들입니다. 낡은 종교의 두려운 심판관 가면을 벗겨내고, 참사랑의 눈물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늘부모님, 그리고 잃어버린 그 핏줄을 다시 찾아주기 위해 십자가의 짐을 지고 이 땅에 오신 ‘참부모(True Parents)’의 웅장한 진실 속으로 이제 함께 걸어 들어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본문 속으로
이 우주적인 비극 속에서 하나님은 인류를 다시 구원하기 위해 수천 년의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오셨습니다. 무서운 심판관의 가면을 벗고 나타나신 이 ‘하늘부모님(Heavenly Parent)’의 처절한 심정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에 떠는 종과 양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하나님의 눈물을 닦아드리는 참된 효자·효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19쪽)
십자가의 승리로 인류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성령(영적인 참어머니의 역할)을 통해 영적 중생의 길을 열었으나, 육신을 쓰고 실체적인 참가정을 이룩하는 구원의 궁극적 완성은 다시 오실 재림의 때로 아득하게 미루어지고 말았습니다.5 이것이 바로 재림주님께서 2천 년 전처럼 구름이 아닌 육신을 쓰고 이 땅에 실체로 다시 오셔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입니다. (49쪽)
하나님은 나를 당신의 거룩한 뜻(지상천국)을 이룰 가장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중심인물로 예정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에 당당히 응답하여 영광스러운 축복의 주인공이 될 것인지, 아니면 책임을 회피하여 하늘부모님의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고 슬픈 플랜 B의 비극을 만들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 자신의 결단과 참사랑의 실천(5%이지만 나의 100%)’에 달려 있습니다. 천일국(天一國)의 시대가 밝았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메시아로서의 혹독한 책임분담을 처절한 사투 끝에 100% 완수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그 섭리의 바통은 우리에게 넘어왔습니다. 우리는 운명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무기로 사탄의 굴레를 박차고 일어나, 하늘부모님의 잃어버린 꿈을 내 가정과 내 나라에 실체로 이룩해 낼 위대한 천일국의 운명 개척자들입니다. (59쪽)
세계사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과거의 어떤 특정한 시대와 수백 년 후의 시대가 등장인물의 성격, 굵직한 사건, 심지어 기간에 이르기까지 경이로울 정도로 유사하게 반복되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를 역사의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을까요? 원리강론은 이 놀라운 현상을 ‘섭리적 동시성(同時性)의 법칙’이라는 정교한 우주적 법칙으로 규명합니다.5 하늘이 애써 세운 중심인물이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해 섭리가 실패로 돌아가면, 하나님은 그 뜻을 결코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일정한 탕감 기간이 지난 후, 하늘은 다른 중심인물을 다시 세우시어 과거에 실패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똑같은 탕감조건을 다시 세우게 하십니다. 이 때문에 역사는 겉보기에는 제자리를 돌고 도는 원(순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탕감 기반을 딛고 나선형으로 상승하며 창조목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76쪽)과학과 이성을 극대화한 가인형 인생관은 전 지구적인 경제 발전과 인터넷이라는 외적인 ‘물질적 통일’을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심정이 빠진 물질문명은 인간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이기심의 극치를 달리고 있습니다. 반면 기성 종교로 대표되는 아벨형 인생관은 한계에 부딪힌 채 현대인들에게 명확한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표류 중입니다. 이 두 인생관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멸망시킴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과학/경제)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종교/윤리)를 하나로 묶어줄 완벽한 ‘새 진리(통일원리)’가 등장하여 두 사상을 모두 품어 안아야만 합니다.5 가인형의 물질적 기반 위에 아벨형의 하늘부모님 심정을 채워 넣음으로써, 인류 역사는 마침내 기나긴 이념의 투쟁을 종식하고 ‘신(神)통일세계’라는 영광스러운 종착역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84쪽)
문자에 갇힌 차가운 율법과 교리는 도리어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는 날카로운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낡은 무지와 폭압은 깨트렸지만, 그 무수한 파벌과 찢겨진 교리를 하나로 융합하여 얼싸안게 할 본질적인 영적 접착제, 즉 ‘하늘부모님의 따뜻한 참사랑(심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인간을 영적으로 억압하던 낡은 제도는 철폐했으나, 인간의 혈통 가장 깊은 곳에 흐르는 원죄의 썩은 뿌리를 근원적으로 맑혀 줄 실체적인 ‘참부모(True Parents)’를 만나지 못했기에 그들의 지상천국 건설 실험은 끝내 처절한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은 인간의 양심과 자유를 해방시키고, 억눌린 인류가 사제를 거치지 않고 하늘부모님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튼튼한 영적 대로를 열어준 위대한 복귀섭리의 승리였습니다. 이제 피로 얼룩진 맹목적인 종교의 교리 전쟁에 극심한 환멸을 느낀 유럽의 지성인들은, 종교를 넘어 인간의 이성과 철학적 합리성을 통해 평화로운 이상사회를 스스로 구축하려는 새로운 사상적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바야흐로 종교의 그늘을 벗어난 계몽주의의 거센 폭주와 임마누엘 칸트의 위대한 철학이 맞붙게 될 거대한 섭리적 무대가 준비된 것입니다. (100쪽)
참부모님의 이 섭리적 대예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름 끼치는 현실의 역사로 나타났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렸고, 이듬해인 1990년 참부모님께서는 적의 심장부인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 들어가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세기의 정상회담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1985년 선포 그대로 “공산주의는 끝났다. 오직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만이 소련이 살길이다”라는 진리의 선언과 함께, 철의 장막의 주인을 원수가 아닌 사랑하는 아들로서 얼싸안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언의 시한인 ‘70년’을 넘기지 않은 1991년 12월 25일, 거대한 소비에트 연방은 총성 한 번 제대로 울리지 못한 채 스스로 붉은 깃발을 내리며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5 하나님을 부정하며 수천만 명의 피를 흘렸던 붉은 광기가, 하늘의 진리와 참부모님의 참사랑 앞에 실체적으로 완전히 굴복한 것입니다. (168쪽)
참부모님의 이 뼈저린 말씀처럼, 신통일세계의 경제는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위하여 사는 삶(Living for the sake of others)’을 제1의 절대 법칙으로 삼습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이기심이라는 무서운 암 덩어리를 도려낸 자리에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온전히 채워 넣을 때, 인류는 비로소 돈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만물의 참된 주인이자 주관자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숭고한 참사랑과 공생의 경제적 토대 위에서만이 비로소 다툼과 억압이 없는 평화로운 정치, 즉 ‘공영(共榮)의 정치’가 활짝 꽃피울 수 있습니다. (180쪽)
공영의 원리가 적용된 회의장에서는 그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워크숍 자료나 여러 프로젝트 제안서들을 평가할 때, ‘나의 승진과 실적’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안건들이 조직 전체의 공적인 목적(하늘의 뜻)을 어떻게 조화롭게 실현할 것인가’를 최우선 기준(정분합 작용)으로 삼습니다. 동료를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자가 아닌 한 식구(형제)로 여기며 그의 아이디어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부족한 점을 내 능력으로 보완하여, 그 융합된 최종 프로젝트의 성과를 내 개인의 공로가 아닌 조직 전체의 공영(共榮)과 기쁨으로 돌리게 됩니다. 가장 높은 직급에 있으면서도 만인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땀 흘리는 ‘섬김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과, 이웃의 의견을 존중하고 융합하는 공영주의의 원리가 조직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때, 바로 그 회의실과 사무실이 가장 작은 실체적 천일국(天一國)이 됩니다. (186쪽)
참부모님께서 제시하신 신통일세계의 세 번째 비전인 ‘공의주의(共義主義)’는, 흔들리는 폭풍우 같은 세상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가치’를 인류의 가슴속에 굳건히 바로 세우는 위대한 윤리적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 공의주의를 작동시키는 가장 깊은 뿌리이자 무한한 에너지가 되는 것이 바로 ‘효정(孝情)’입니다. (188쪽)모든 인류의 고귀한 실험들이 일시적인 성공이나 소수의 피난처로 끝나지 않고 전 우주적인 ‘천일국(天一國)’으로 영원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류를 사탄의 핏줄에서 하늘의 핏줄로 근원적으로 수술해 주실 ‘참부모(True Parents)’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5 참부모님이 열어주신 축복결혼을 통해 혈통을 전환한 참가정들이 몬드라곤처럼 공영의 일터를 가꾸고, 포콜라레처럼 부를 나누며, 브루더호프처럼 절대 순결의 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 나갈 때. 비로소 인류의 낡고 병든 역사는 종언을 고하고 하늘부모님이 직접 치리하시는 영원한 평화의 실체 세계가 이 지상 위에 웅장하게 건설될 것입니다. (199쪽)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참부모님께서 걸어가신 ‘북한 섭리’의 발자취는, 타락한 정치 외교사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눈물겨운 참사랑의 서사시입니다. 1990년대 초반, 전 세계 공산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붕괴하자 북한 정권은 극도의 고립과 체제 위기에 몰리며 한반도에 또다시 끔찍한 전쟁의 전운을 짙게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이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참부모님께서는 1991년 11월 30일, 그 어떤 정치적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목숨을 걸고 적의 심장부인 평양으로 전격 들어가셨습니다. 평생을 승공(勝共) 운동의 선봉에 서셨던 참부모님을 북한 당국은 가장 두려워하는 원수 중의 원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참부모님께서는 만수대 의사당에 모인 북한 고위 간부들 앞에서 당당히 “주체사상으로는 북한을 결코 살릴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주의(두익사상)로 돌아와야만 통일과 번영이 가능하다”고 준엄하게 선포하셨습니다. (220쪽)
이제 남은 것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며 기적만 요행으로 바라는 역사의 나약한 방관자가 아닙니다. 이 웅장한 천일국을 우리들 매일의 삶의 한복판에 실체적으로 안착시켜야 할 당당한 천일국의 주역들입니다. 매일의 훈독회로 무장하고, 천심원의 기도로 영적인 불을 지피며, 내 가정에서 효정의 참사랑을 완성하여 세상을 향해 신종족메시아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 그리하여 내 이웃을 살려내고 마침내 하늘의 생명책인 천보(天寶)의 자리에 벅차게 오르는 것. 이것이 복귀섭리의 영광스러운 종착역에 선 우리가,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올려드려야 할 최후의 승리적 보고서입니다. (237쪽)
탕감복귀의 춥고 힘들었던 어둠의 밤은 이제 완전히 끝났습니다. 역사의 찬란한 동이 트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을 털어내고 분연히 일어납시다. 하늘부모님 아래 80억 인류가 한 가족(One Family under God)으로 얼싸안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천일국의 당당하고 실체적인 주인으로서, 저 찬란한 신통일세계를 향한 위대한 진군의 발걸음을 내딛읍시다! (243쪽)
지은이 소개
권 상 기1966년 출생.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일본 내 한국의 이미지 제고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어 강사 및 한국 문화 전파에 앞장섰다. 특히 재일 민단과 총련, 그리고 일본 사회의 화합을 도모하며 남북통일 운동에 헌신했고, 청년·학생들을 위한 교육 및 장학 사업, 양국 간의 교류 활동을 꾸준히 전개하며 한일 민간 외교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세계적으로 만연해지는 자국 중심주의와 우경화, 그로 인한 일본 내 혐한 문제와 약자를 향한 차별 및 증오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깊이 고뇌해 왔다. 그 해답으로 통일원리에 기초한 ‘공생(共生)·공영(共榮)·공의(共義)주의’에 주목하여 이를 깊이 연구하고 있으며, 진정한 평화 세계 구현을 위한 실천적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2026년 초, 33년간의 선교사 생활을 갈무리하고 귀국했다. 현재 ‘공생공영공의연구소’를 설립하여 한국을 거점으로 활발한 연구와 평화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인 아내와 사이에 4녀 1남을 두고 있다.
저자 연락처전화 010-6754-3013홈페이지 : https://kjbridge.net이메일 : ksgy2035@gmail.com
차 례
책머리에 / 길 잃은 문명, 그 고통의 역사를 넘어 신통일세계의 아침을 열며 ·4
제1부 구원의 여정과 신학적 토대(이론편)
1. 신론(神論): 심판관의 가면을 벗고 ‘하늘부모님’의 심정(Heart)과 만남 ·142. 창조론(創造論): 창조 이상과 인류에게 부여된 3대 축복과 책임분담 ·213. 타락론(墮落論)과 원죄론(原罪論): 끊어진 사랑의 탯줄, 그리고 하늘부모님의 피눈물 ·284. 구원론(救援論): 십자가 대속과 세례를 넘어, 혈통 전환과 축복으로 여는 구원의 길 ·355. 기독론(基督論): 심판관의 교리를 넘어 ‘참부모’로 오신 구원자 ·436. 예정론(豫定論): 하늘부모님의 눈물겨운 기다림과 플랜 B ·517. 부활론(復活論): 죽음을 넘어 하늘부모님께 나아가는 생명의 길 ·588. 종말론(終末論): 심판의 두려움을 넘어선 희망의 종말론 ·649. 역사론(歷史論): 일반 역사관의 한계와 섭리적 동시성의 법칙 ·72
제2부 이상세계를 향한 역사적 도전과 한계(역사편)
1. 인류 역사의 방향성: 가인·아벨형 인생관의 투쟁을 넘어 통일로 ·802. 종교적 이상향을 향한 인류의 갈구: 맹목적 도그마를 넘어선 섭리의 나침반 ·863. 이상세계를 향한 신앙의 개혁: 종교개혁의 위대한 승리와 교리주의의 한계 ·934. 유물론의 폭주를 막아선 철학적 방파제: 임마누엘 칸트의 ‘아벨형 인생관’ ·1015. 이상사회를 향한 정치·구조적 개척: 크롬웰의 좌절과 몽테스키외의 도전 ·1076. 잃어버린 심정과 영성을 깨우다: 폭스, 웨슬레, 스웨덴보리의 영적 대각성 ·1147. 철학적 이성으로 그려낸 이상향: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와 그 한계 ·1208. 자본주의의 탐욕 속에서 피어난 참사랑의 실험: 로버트 오웬의 ‘뉴래너크’ ·1289. 지상천국의 왜곡과 참극: 원리형 비원리세계로서의 공산주의 ·13510. 천국을 향한 신앙의 방어전: 기독교 사회주의와 가톨릭 사회교리의 전개 ·14211. 체제 생존을 위한 타협과 파탄: 복지국가의 실험과 신자유주의의 그림자 ·148
제3부 이상세계의 실체적 완성: 신통일 세계의 비전(비전편)
1. 복귀섭리로 본 역사의 발전 단계: 투쟁을 넘어선 공생·공영·공의의 도래 ·1562. 자유민주세계의 마지막 보루: 반공(反共)을 넘어 승공(勝共)으로 ·1633. 이념의 종언과 영원한 대안: 두익사상(頭翼思想)과 공생·공영·공의주의 ·1704. 신통일세계의 경제 비전: 만물의 참된 주권과 ‘공생(共生) 경제’의 실현 ·1765. 신통일세계의 정치 비전: 권력 투쟁을 넘어선 ‘공영(共榮)’의 형제주의 정치 ·1826. 신통일세계의 윤리 비전: 절대가치의 회복과 ‘공의(共義)’의 심정문화세계 ·187
제4부 신통일세계의 실체적 안착을 위한 도전과 우리의 사명(실천편)
1. 공생·공영·공의의 맹아(萌芽): 인류의 위대한 공동체 실험과 그 한계 ·1942. 환경 위기 극복과 미래세대: 해양섭리, 선학평화상, 그리고 퓨어워터 ·2003. 심정문화와 기술 평준화: 언론·예술 섭리와 국제과학통일회의(ICUS), 평화고속도로 ·2064. 아벨 유엔(UPF)과 초국가적 평화 연대: 글로벌 거버넌스의 혁신 ·2125. 신통일한국과 세계 평화: 한반도 평화 서밋과 아시아·태평양 유니언(APU) ·2186. 타락 혈통의 청산과 평화의 실체: 교차교체 축복결혼과 참가정 운동 ·2257. 천일국 안착의 최전선: 효정문화와 신(神)종족메시아, 그리고 천보(天寶) 섭리 ·2328. 탕감복귀의 긴 밤을 지나, 신(神)통일세계의 찬란한 아침으로 ·239
주(Notes) ·244부록 및 참고문헌부록 - 통일사상 핵심 용어 해설(Glossary of Key Terms) ·267참고문헌(References)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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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07
4-9 탕감복귀의 긴 밤을 지나 신통일세계의 찬란한 아침으로
인류의 6천 년 역사는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찾아 헤매는 탕자의 처절한 방황이었습니다. 에덴에서의 타락으로 인해 우리는 우주의 참된 주인이신 하늘부모님을 잃어버렸고,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인 형제 살육의 비극은 수천 년 동안 인종과 종교,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거대한 대립으로 확대되어 이 지구를 끊임없이 피로 물들였습니다.
하늘부모님의 피눈물과 탕감의 역사
찢기고 상처 입은 인류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겪으신 분은 바로 부모 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늘부모님은 원수의 핏줄을 달고 죄악의 늪에서 신음하는 자식들을 다시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배신과 탄압 속에서도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탕감복귀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오셔야만 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몰라 보고 십자가에 못 박는 그 끔찍한 배역의 역사 속에서도, 하늘부모님은 포기하지 않고 피눈물을 흘리시며 기나긴 섭리의 캄캄한 밤을 홀로 지새우셨습니다.
이 어둠의 밤은 단순히 인류만의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자녀를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으로 역사를 주관해 오신 하늘부모님의 한스러운 여정이었습니다. 인류가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이기적인 자본주의의 충돌로 멸망의 벼랑 끝에 섰던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하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참부모님의 현현과 십자가 시대의 종언
어둠이 가장 짙을 때 새벽은 비로소 맹렬하게 밝아오는 법입니다. 하늘부모님의 온전한 체휼체이자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참부모님께서는 마침내 탕감복귀의 모든 십자가를 실체적인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편안한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흥남 감옥의 사지와 살을 에는 알래스카의 혹한, 그리고 목숨을 걸고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과의 회담을 이끌어 내는 등 피와 땀과 눈물로 얽힌 승공의 섭리를 완수하셨습니다.
사탄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공산주의의 철의 장막을 완전히 녹여 내셨고, 우익의 탐욕과 좌익의 증오를 모두 참사랑으로 품어 안는 두익사상(하나님주의)을 선포하시며 극단적 이데올로기 투쟁의 시대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으셨습니다. 무엇보다 국경과 원수의 장벽을 뛰어넘는 교차교체 축복결혼을 통해 절대 끊어지지 않는 참사랑의 핏줄을 지구촌 구석구석에 심으셨으며, 바다와 오지를 개척하시고 기술을 평준화하시어 80억 인류가 다 함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거대한 공생의 뼈대를 손수 세워 주셨습니다.
수백 년간 고통과 핍박 속에서 살아왔던 아프리카를 방문하셔서 이들의 아픔을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오랜 한을 해원해 주셨습니다. 바야흐로 피 흘리던 십자가의 탕감 시대가 영원히 끝나고, 벅찬 참사랑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입니다.
공생·공영·공의로 펼쳐지는 신통일세계
이제 우리는 참부모님의 피눈물 어린 승리적 터전 위에서, 과거의 어떤 성인이나 영웅도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위대한 기적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인류는 더 이상 낡은 이데올로기나 자국 이기주의에 얽매여 서로를 짓밟고 파괴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잃어버린 만물주관권을 회복하여 이기적 독점을 끝내고 형제와 부를 나누는 경제인 공생, 다수결의 횡포와 패권 투쟁을 넘어 부모의 섬김과 연대로 다스리는 형제주의 정치인 공영, 그리고 하늘을 향한 효정을 절대가치로 삼아 인류의 영혼을 정화하는 심정문화세계인 공의라는, 너무도 완벽하고 웅장한 신통일세계의 청사진이 활짝 펼쳐져 있습니다. 이 영원한 평화의 실체 세계, 천일국의 눈부신 아침 햇살은 이미 어둠을 가르고 우리 머리 위로 찬란하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역사의 방관자에서 천일국의 실체적 주인으로
그러나 우리가 이 가슴 벅찬 시대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위대한 신통일세계는 하늘만 쳐다보며 가만히 앉아서 맞이하는 마술 같은 유토피아가 결코 아닙니다. 참부모님께서 목숨 바쳐 평평하게 닦아놓으신 그 거룩한 승리의 터전 위에, 이제 내 땀방울로 벽돌을 얹어 실체적인 평화의 집을 완성해 내는 것은 온전히 남아있는 우리 모두의 숭고한 사명이자 책임분담입니다.
이제 매일 아침 가족이 함께 훈독회의 진리로 세속에 찌든 영혼을 깨우고, 내 가정에서 부부가 하나 되며 자녀를 하늘의 뜻으로 품어내는 참가정의 성전을 굳건히 지켜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직장과 조직에서 부서 이기주의를 과감히 타파하고, 동료를 밟고 일어설 라이벌이 아닌 형제자매로 여기며 투명하게 가치를 나누는 공생과 공영의 리더십을 오늘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나아가 천심원의 눈물 어린 기도로 영적인 불을 지피고, 이기주의에 병든 이웃과 지역 사회를 향해 참사랑의 손을 내미는 신종족 메시아로 거침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의 작은 회의실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척박한 일터의 한복판에서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품고 내딛는 그 헌신적인 발걸음 하나하나가 모일 때, 그것은 곧 전 세계를 하나로 잇는 거대한 국제평화고속도로가 될 것입니다.
천일국의 찬란한 일출을 향하여
우리 각자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이 작은 효정의 불꽃이 들불처럼 번져나갈 때, 우리는 마침내 하늘의 족보인 천보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며,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와 태평양, 그리고 온 세계를 밝히는 신통일세계의 장엄한 일출을 벅차게 맞이할 것입니다.
탕감복귀의 춥고 힘들었던 어둠의 밤은 이제 완전히 끝났습니다. 역사의 찬란한 동이 트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과거의 상처와 두려움을 털어내고 분연히 일어나야 합니다. 하늘부모님 아래 80억 인류가 한 가족으로 얼싸안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천일국의 당당하고 실체적인 주인으로서, 저 찬란한 신통일세계를 향한 위대한 진군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입니다.
권상기
2026.07.11
4-8 천일국 시대: 신종족메시아와 효정문화의 실천
2천 년 기독교 역사가 개인의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천일국 시대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구원 패러다임을 제시합니다. 참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은 단순히 한 가정의 행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지역사회 전체를 품어 안는 우주적 사랑의 시작점입니다. 촛불이 어둠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태우듯, 축복받은 가정에게는 사탄의 문화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구원해야 하는 거룩한 책임이 주어집니다.
개인 구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신앙의 지평
과거의 신앙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에 머물렀다면, 천일국 시대의 신앙은 살아있는 동안 참가정을 이루고 내 종족 전체를 구원하는 것으로 그 차원이 확장됩니다. 이를 위해 참부모님께서는 모든 축복가정에게 신종족메시아라는 엄중한 사명을 직접 부여하셨습니다. 신종족메시아란 예수님이나 참부모님처럼 세계를 구원하는 메시아를 대신하여, 자신이 속한 가문과 지역사회 430가정을 온전히 책임지고 참사랑으로 살려내는 실체적 메시아가 되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늘부모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자 가장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매일 스쳐 가는 직장 동료, 이웃, 친척들에게 하늘의 말씀과 참사랑을 전하며 그들을 축복식으로 인도하는 것, 이것이 신종족메시아의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수많은 신종족메시아들이 자기 동네와 종족의 영적인 참부모로 일어설 때, 그 촘촘한 생명의 연대망은 거대한 신통일세계를 묶어내는 가장 튼튼한 기초가 될 것입니다.
영적 에너지의 발전소, 천심원의 역사
신종족메시아의 막중한 사명을 타락성을 벗지 못한 내 힘만으로 감당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끊임없이 하늘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고 부활하기 위해, 참어머님께서는 영적 부흥의 거대한 발전소인 천심원 기도실을 전 세계에 전수해 주셨습니다. 천심원이란 말 그대로 하늘부모님의 심정과 통하는 거룩한 동산입니다.
인간의 얕은 지식이나 형식적인 신앙만으로는 이기적인 이웃의 마음을 결코 녹일 수 없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하늘부모님과 온전히 하나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령과 진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천심원 철야 기도회와 수련회는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와 눈물의 회개를 통해 굳어버린 영혼의 세포를 깨우고, 하늘부모님의 피 끓는 탕감의 심정을 내 가슴에 실체로 체휼하게 만드는 강력한 성령의 용광로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천심원의 역사가 한국의 본부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 전 세계 각 대륙과 지역 교회로 맹렬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성도들이 천심원 기도실에 모여 무릎을 꿇고 정성을 들일 때, 영계의 절대선령들과 참어머님의 영적 에너지가 직접 공명하여 기적 같은 치유와 부흥의 역사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습니다. 천심원의 기도는 이기적인 소원 성취가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한을 풀어드리고 내 종족을 살려내겠다는 효정의 눈물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효정문화
천심원에서 영적 에너지를 공급받은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거대한 문화 운동으로 확장됩니다. 그것이 바로 참어머님께서 전 세계를 향해 찬란하게 꽃피우고 계신 효정문화입니다. 하늘부모님을 향한 뜨거운 효도의 심정이 없이는, 나를 핍박하거나 무관심한 이웃을 참사랑으로 끝까지 품어낼 수 없습니다.
오늘날 예술, 문화, 학술, 체육 등 모든 섭리의 현장에서는 세속적인 쾌락 문화를 단호히 밀어내고, 하늘부모님을 찬양하며 인류 형제들을 품어 안는 효정의 빛이 강력하게 발산되고 있습니다. 찬양과 율동, 그리고 위하는 삶을 통해 퍼져나가는 효정문화는 이기주의에 병든 현대인들의 우울함과 상처를 어루만집니다. 특히 HJ천주천보수련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효정 천주특별 수련은, 지상의 인간뿐만 아니라 영계에 있는 수많은 억울한 조상들까지 타락의 굴레에서 해방시키고 절대선령으로 축복의 자리에 이끄는, 영육을 아우르는 우주적 구원의 실체입니다.
하늘의 명예 전당, 천보 섭리의 의미
뼈를 깎는 기도와 정성, 그리고 끝없는 참사랑의 실천으로 마침내 신종족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한 승리적 가정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최고 영예가 바로 천보 섭리입니다. 천보란 문자 그대로 하늘의 귀한 보물이라는 뜻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수천 년 복귀섭리의 한을 풀어드리고 지상에 천일국을 안착시키는 데 공헌한 승리자들을, 천일국의 거룩한 명예의 전당인 천보원에 영원토록 등재해 주십니다.
이것은 벽에 거는 단순한 표창장이나 세속적 훈장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의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거룩한 족보에 참부모님의 승리적 자녀로서 그 이름이 당당히 기록되는 영원한 천국 영주권이자, 우리 후손 대대로 영광스럽게 물려줄 가장 위대하고 찬란한 영적 유산입니다. 430대 조상 축복 및 430가정 지상 축복을 완수한 가정들이 천보의 자리에 오를 때, 그들은 천일국 건설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매일의 훈독회, 지상천국의 실체적 완성
이 모든 섭리의 웅장한 여정이 궁극적으로 결착되는 가장 거룩한 장소는 거대한 유엔 총회장도, 화려한 궁전도 아닙니다. 그곳은 바로 매일 아침 사랑하는 가족과 마주하며 참사랑을 훈련하는 실체적인 삶의 터전, 즉 가정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이 지상천국을 일상에서 실체로 가꾸어 나가는 가장 완벽한 신앙의 도구로 훈독회의 전통을 세워주셨습니다.
훈독회는 단순히 책을 소리 내어 읽는 의식이 아닙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하늘의 말씀을 온 가족이 함께 봉독하며, 사탄 세계의 세속적인 이기심으로 오염된 나의 뇌세포와 영혼을 맑게 씻어내고, 오직 하늘부모님의 심정과 내 주파수를 완벽하게 맞추는 거룩한 영적 조율의 시간입니다. 이 훈독회의 말씀이 내 심령을 울리고, 그 힘으로 아내가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며 남편이 아내를 생명처럼 아낄 때,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타인을 위해 살라며 참사랑의 등을 두드려줄 때, 그 가정은 이미 완벽한 지상천국이 됩니다.
매일의 훈독회를 통해 굳건한 참가정을 이루고, 문밖을 나서며 이웃에게 위하여 사는 참사랑을 땀 흘려 실천하는 삶,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정치 제도보다 이 땅에 신통일세계를 앞당기는 가장 확실하고 위대한 첫걸음입니다.
천일국 안착을 위한 우리의 결의
탕감복귀의 길고 어두웠던 피눈물의 밤은 이제 완전히 지나갔습니다. 참부모님의 피와 땀, 그리고 처절한 눈물로 얼룩진 승공섭리, 해양섭리, 아벨 유엔의 창설, 그리고 마침내 혈통 전환의 기적을 이룬 교차교체 축복결혼을 통해, 인류가 머물러야 할 신통일세계의 웅장한 집은 이미 지어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롯이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며 기적만 요행으로 바라는 역사의 나약한 방관자가 아닙니다. 이 웅장한 천일국을 우리들 매일의 삶의 한복판에 실체적으로 안착시켜야 할 당당한 천일국의 주역들입니다. 매일의 훈독회로 무장하고, 천심원의 기도로 영적인 불을 지피며, 내 가정에서 효정의 참사랑을 완성하여 세상을 향해 신종족메시아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 그리하여 내 이웃을 살려내고 마침내 하늘의 생명책인 천보의 자리에 벅차게 오르는 것이 우리가 하늘부모님과 참부모님 앞에 눈물로 올려드려야 할 최후의 승리적 보고서입니다.
권상기
2026.07.11
4-7 타락 혈통의 청산과 평화의 실체: 교차교체 축복결혼과 참가정 운동
평화를 위한 수많은 조약이 체결되고 국제기구가 설립되지만, 인류 역사에서 전쟁과 갈등은 끊이지 않습니다. 완벽한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도 서명하는 인간의 내면이 이기심과 증오로 가득하다면, 그 평화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취약한 것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제도의 개혁이나 경제적 발전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타락한 혈통, 평화를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
통일사상의 관점에서 인류가 겪는 모든 비극의 뿌리는 정치 체제나 경제 구조가 아닌, 인간 내면에 흐르는 타락한 혈통에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첫 조상이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인류는 원죄를 물려받았고, 이 타락한 혈통은 세대를 거듭하며 이기심, 증오, 파괴적 충동으로 표출되어 왔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고 도덕적 수양을 쌓아도, 근본적인 혈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돌감람나무에 아무리 좋은 비료를 주고 가지를 쳐내어도 결국 돌감람나무 열매만 맺는 것과 같습니다. 참감람나무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돌감람나무를 잘라내고 참감람나무의 새 순을 접붙이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합니다. 인류에게도 이와 같은 혈통의 전환, 즉 사탄의 핏줄에서 하늘부모님의 선한 핏줄로 접붙이는 영적 수술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참부모를 통한 혈통 전환의 섭리
혈통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순수하고 깨끗한 생명의 근원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구세주를 참부모로 모셔야 하는 섭리적 이유입니다. 본래 아담과 해와가 하나님의 뜻대로 완성되었다면 인류의 참부모가 되어 죄 없는 자녀를 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타락으로 인류는 거짓 부모의 후손이 되었고, 모든 인간은 돌감람나무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는 제2의 아담으로 오셔서 독생녀를 맞이하여 어린양 잔치를 이루고 참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써 영적 구원만 이루고 육적 혈통 복귀는 미완으로 남았습니다. 따라서 마지막 때에는 하늘부모님의 혈통을 온전히 이어받은 참부모가 지상에 현현하여 영육을 아우르는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축복결혼은 이러한 혈통 전환의 핵심 의식입니다. 단순한 결혼식이 아니라 원죄를 벗고 하늘의 참된 자녀로 거듭나는 영적·육적 구원의 성례전입니다. 참부모를 통해 타락한 핏줄이 정화되고, 인간은 하늘부모님의 선한 혈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교차교체 축복, 원수를 가족으로 묶다
참부모님이 집전하신 축복결혼 중에서도 가장 혁명적인 것은 교차교체 축복결혼입니다. 이는 수십 년, 수백 년간 서로를 증오하며 전쟁을 벌였던 원수 국가의 남녀를 부부로 맺어주는 전대미문의 평화 실천입니다. 백인과 흑인이 부부가 되고, 자본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의 청년들이 만나며, 세계의 모든 언어와 문화가 하나의 가정 안에서 용해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이 맺은 평화 조약은 국가 이익에 따라 언제든 파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사랑으로 맺어진 핏줄은 그 어떤 권력이나 이념으로도 끊을 수 없습니다. 교차교체 축복을 통해 탄생한 자녀들은 부모의 두 조국을 모두 사랑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가슴 속에는 증오나 원한이 자리할 수 없습니다. 이는 세상 그 어떤 위대한 사상가나 정치인도 이루지 못한 항구적 평화의 실체적 기초입니다.
한일 교차축복이 만든 기적의 이야기
교차교체 축복의 가장 감동적인 사례는 한국과 일본의 축복결혼입니다. 식민 지배의 뼈아픈 역사로 얼룩진 두 나라는 해방 후에도 깊은 상처와 반목을 겪어왔습니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수만 명의 한일·일한 축복가정이 탄생했고, 특히 많은 일본 여성들이 한국의 농촌과 어촌으로 시집왔습니다.
이들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열악한 경제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던 반일 감정과 시댁 식구들의 차가운 시선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본인 며느리들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거 일본이 한국에 지은 역사적 죄악을 자신의 피와 땀으로 속죄하고, 이 나라를 참사랑으로 품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왔다는 섭리적 사명감으로 무장되어 있었습니다.
병든 시부모의 대소변을 손수 받아내며 극진히 모시고,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핍박 앞에서도 끝끝내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르자 일본 사람은 다 나쁘다며 멸시하던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손을 붙잡고 네가 내 친딸보다 낫다며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기적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습니다. 며느리의 참사랑이 수십 년 묵은 민족의 한을 완벽하게 녹여낸 것입니다.
반대로 일본으로 시집간 한국인 며느리들의 삶 또한 피눈물 나는 탕감과 승리의 노정이었습니다. 한국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차별, 시댁 식구들의 냉대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국땅의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도 묵묵히 인내하며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냈습니다. 그 굽힐 줄 모르는 지극한 정성과 참사랑의 희생 앞에 얼음장 같던 시댁과 이웃들의 마음은 완전히 녹아내렸고, 마침내 현지 사회에서 진심 어린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한일·일한 교차축복을 통해 태어난 자녀들에게 한국과 일본은 모두 핏줄로 연결된 사랑하는 부모의 조국입니다. 이 축복가정들은 양국의 과거사를 치유하고 미래의 동북아 평화를 잇는 실체적인 사랑의 평화 대교로 굳건히 서 있습니다.
참가정 운동, 무너진 사회를 재건하는 윤리의 학교
축복결혼을 통해 탄생한 참가정은 단순히 사회를 구성하는 작은 세포가 아니라, 신통일세계를 지탱하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참가정은 자녀·형제·부부·부모의 사랑이라는 4대 심정권을 훈련하고 완성하는 절대 윤리의 학교입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는 쾌락주의와 이혼의 급증으로 가정의 근간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가정이 붕괴하면 그 사회와 국가는 아무리 부유해도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맙니다.
참부모님은 축복의 은혜를 종단 내부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대대적인 참가정 실천 운동으로 전개하셨습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순결 서약 운동은 타락한 성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성은 쾌락의 도구가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 하늘의 생명을 잉태하는 가장 거룩하고 신성한 것임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또한 아직 축복을 받지 못한 일반 사회의 부부들에게도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는 슬로건 아래, 종교와 교파를 초월하여 부부가 다시금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참가정 축복식을 전 세계에서 거행했습니다.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 심정 상담, 다문화 가정을 돕는 봉사, 참부모의 심정으로 지역 주민을 교육하는 활동 등을 통해 참가정 운동은 핏줄의 섭리를 일상생활 속의 거대한 문화적 혁명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혈통 전환이 완성하는 평화의 실체
교차교체 축복결혼과 참가정 운동은 타락한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하늘부모님의 참사랑 유전자로 완벽하게 바꾸어내는 하늘부모님의 창조이상의 실체적 완성입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 의식이나 사회 운동을 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실체적인 평화 운동입니다. 정치적 조약이나 경제적 협력은 이해관계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피로 맺어진 가족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이 거룩한 참혈통의 띠가 온 지구촌을 빈틈없이 묶어낼 때, 인류는 마침내 거짓과 전쟁의 낡은 역사를 마감하고 하늘부모님과 영원히 동거동락하는 평화의 실체 세계, 천일국의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회의장의 조약서가 아니라 가정의 식탁에서 시작되며, 국경선이 아니라 부부의 침실에서 완성됩니다. 혈통의 전환이야말로 인류가 꿈꾸어온 항구적 평화를 이루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입니다.
권상기
2026.07.11
4-6 신통일한국과 아시아·태평양 연합의 비전
세계 지도를 펼쳐보면 한반도는 동북아의 작은 반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왜 이 작은 땅이 80억 인류의 평화를 여는 핵심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을까요? 이는 단순한 지정학적 우연이 아니라,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준비되어 온 섭리적 필연입니다. 한반도의 평화 통일이 왜 세계 평화의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비전과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한민족이 평화의 발원지가 된 역사적 배경
반만년의 역사를 지닌 한민족은 수많은 외침을 겪었습니다. 몽골의 침략, 청나라의 지배, 일제 강점기의 고통을 견뎌내면서도 단 한 번도 먼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의 민족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한민족의 정신 속에 깊이 뿌리내린 독특한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냈습니다.
경천명 사상은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을 일깨웠고, 효와 충의 가치는 가정과 국가를 향한 헌신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한민족은 언젠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존재가 나타날 것이라는 대망사상을 품고 살아왔습니다. 이러한 정신적 전통은 한민족을 평화세계를 향한 특별한 소명을 지닌 민족으로 준비시켰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명은 고난과 함께 왔습니다. 일제 강점기 40년의 압제와 6·25 전쟁의 참화는 한민족이 세계를 대신하여 짊어진 십자가였습니다. 이 뼈를 깎는 고난의 역사가 역설적으로 한반도를 인류 평화의 출발점으로 만드는 탕감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한반도가 평화 섭리의 최종 결승전인 이유
20세기 세계는 민주 진영과 공산 진영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했습니다. 이 거대한 이념 대결의 축소판이 바로 한반도입니다. 38선은 단순한 정치적 경계가 아니라 무신론과 유신론, 물질주의와 정신주의가 정면으로 맞선 천주적 대결의 최전선입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 없이는 동북아의 진정한 평화가 없고, 동북아의 평화 없이는 세계 평화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한반도의 철조망이 녹아내릴 때 비로소 인류를 짓누르던 모든 사상적 분열이 치유되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것이 한반도가 단순한 지역 문제를 넘어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 이유입니다.
북한을 향한 참사랑의 평화 접근
1990년대 초 공산권 붕괴로 북한 정권이 고립되고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놀라운 평화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1991년 11월 30일, 문선명 총재는 그 어떤 정치적 보장도 없이 목숨을 걸고 평양으로 향했습니다.
평생 승공 운동의 선봉에 섰던 문 총재를 북한은 가장 두려워하는 원수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만수대 의사당에서 북한 고위 간부들 앞에 당당히 서서 주체사상으로는 북한을 살릴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주의로 돌아와야 통일과 번영이 가능하다고 선포했습니다.
김일성 주석과의 단독 회담에서 문 총재는 총칼이 아닌 형제애와 부모의 심정으로 그를 뜨겁게 끌어안았습니다. 원수를 형제로 품어 안은 이 역사적 포옹은 얼어붙었던 북한의 적개심을 녹이고 전쟁 위기를 기적적으로 잠재웠습니다. 이후 평화자동차 설립 등 대규모 경제 지원이 이어지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실체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신통일한국: 두익사상을 중심한 새로운 통일 비전
한반도 통일은 단순히 북한을 흡수하거나 제도를 결합하는 외적 통일이어서는 안 됩니다. 자본주의에 물든 남한의 배금주의와 주체사상으로 세뇌된 북한의 증오심이 아무런 정화 없이 만난다면, 통일 이후의 혼란은 분단 시대보다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신통일한국의 비전은 남한의 우익도 북한의 좌익도 아닌 제3의 길을 제시합니다. 바로 하늘부모님을 중심에 모시는 두익사상입니다. 이는 남북한을 단순히 제도로 합치기 전에 먼저 심정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합니다.
남과 북이 하늘부모님 아래 한 핏줄을 나눈 형제임을 깨닫고 과거의 상처를 용서할 때, 참사랑과 공생·공영·공의주의를 중심으로 진정한 형제애가 회복됩니다. 이러한 심정적 통일이 선행될 때 한반도는 갈등하는 세계를 품어 안는 평화의 모국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한반도 평화 서밋과 국제사회의 참여
신통일한국의 비전을 현실 정치와 국제 사회에 실체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은 월드 서밋을 지속적으로 개최해왔습니다. 특히 THINK TANK 2022 출범과 함께 열린 한반도 평화 서밋에는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 등 전 세계 전·현직 국가수반과 노벨상 수상자 수십 명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자국의 좁은 이익을 넘어 한반도의 평화가 곧 세계 평화를 여는 마스터 키라는 비전에 공감했습니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하고 촉구하는 국제적 결의가 다져지면서 한반도 문제는 더 이상 남북한만의 고립된 정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풀어가야 할 평화 과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평화 시민들이 동참한 이 서밋은 전 세계의 정치, 종교, 언론 지도자들이 하늘부모님 아래 한 가족으로서 지혜를 모아 해법을 찾아가는 아벨적 평화 연대의 결정체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유니언: 모성적 참사랑의 평화 공동체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아시아와 태평양 전체를 아우르는 초국가적 평화 공동체의 탄생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제시된 것이 아시아·태평양 유니언(APU)입니다.
과거 대서양 문명권은 산업화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했으나 제국주의적 착취와 노예제도, 자원 낭비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습니다. 이제 문명사적 중심은 아시아와 태평양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문명권은 과거와는 다른 원리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아시아·태평양 유니언은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주변국을 굴복시키는 패권 블록이 아닙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피와 살을 기꺼이 내어주는 어머니의 참사랑, 즉 모성적 리더십을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대양을 품은 수많은 섬나라와 대륙 국가들이 서로의 문화를 깊이 존중하고 해양 자원과 기술을 대가 없이 공유하며, 좁은 영토 분쟁을 형제애로 극복해 나가는 참사랑의 평화 대륙을 지향합니다.
신통일한국이 튼튼한 심장이 되어 아시아·태평양 연대가 완전하게 연결될 때, 이 참사랑의 평화 물결은 오대양 육대주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류는 오랜 분열과 갈등을 영원히 끝내고 하늘부모님을 모신 항구적인 평화의 세계, 천일국 시대를 열어젖히게 됩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단순한 남북 통일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하나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문명의 출발점입니다. 고난의 역사를 견뎌온 한민족이 참사랑으로 화해와 용서의 모델을 보여줄 때, 전 세계는 평화로 나아가는 확실한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권상기
2026.07.11
4-5 아벨 유엔 UPF가 제시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혁신과 초국가적 평화 연대의 미래
자국 이기주의에 갇힌 유엔, 그 한계를 넘어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탄생한 국제연합(UN)은 인류가 다시는 전쟁의 참혹함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세워진 국제기구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유엔은 국제 분쟁을 중재하고 인도적 구호 활동을 펼치며 세계 평화 유지에 기여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유엔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학살, 기후 위기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현재의 유엔은 인류 보편의 가치보다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주권 국가들의 집합체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거부권을 무기로 패권 다툼을 벌일 때마다 인류 전체의 생명과 공익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순간, 유엔은 그저 무력한 관망자로 남을 뿐입니다.
신통일세계의 정치 비전은 형제주의에 입각한 공영에 있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인간의 이성과 힘의 논리에만 의존하는 현재의 유엔 체제는 약소국을 품어 안는 공영의 정신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국 이기주의라는 원죄의 벽 앞에서 작금의 국제 정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천주평화연합 UPF의 창설과 아벨 유엔의 비전
이러한 기존 유엔의 태생적 한계를 간파한 참부모님은 진정한 세계 평화의 구심점을 세우기 위한 섭리를 단행하셨습니다. 2005년 9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전 세계 국가수반과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천주평화연합(UPF, Universal Peace Federation)이 창설되었습니다.
UPF는 단순한 비정부기구가 아닙니다. 이기주의와 패권 다툼으로 타락한 가인 유엔을 섭리적으로 일깨우고 올바른 길로 인도할 아벨 유엔으로서 창설된 것입니다. 참부모님은 자국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유엔만으로는 결코 영구적인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늘부모님의 뜻과 참사랑을 중심 삼고 인류의 영적 양심을 대변하는 아벨적 평화 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벨이 가인을 희생과 참사랑으로 품어 자연굴복시키듯, UPF는 기존 유엔을 적대하여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심정문화와 공영의 비전을 불어넣어 온전히 거듭나게 하려는 거룩한 섭리적 사명을 띠고 출범했습니다.
양원제 유엔과 초종교의회 신설 제안
UPF가 제시하는 가장 혁명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비전은 바로 유엔 양원제의 제안입니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 마음과 보이는 몸으로 이루어져 있듯, 세계 역시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와 현실 제도를 다스리는 정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몸이 마음의 지시를 받을 때 온전한 사람이 되듯, 정치와 경제도 올바른 영적 가치관의 지도를 받아야만 타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유엔 총회는 오직 각국의 이익을 쟁취하려는 정치 대표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양심의 소리를 잃어버린 채 욕망의 바다를 헤매고 있습니다. 이에 참부모님께서는 기존의 정치적 유엔 총회를 하원으로 삼고, 전 세계의 훌륭한 종교 지도자와 정신적 스승들로 구성된 초종교초국가평화의회를 상원으로 신설하여 유엔을 양원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진실한 종교 지도자들은 좁은 국익이나 정치적 파벌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뜻과 인류 보편의 양심을 대변합니다. 초종교의회가 이기적인 유엔 총회를 영적이고 도덕적으로 지도하고, 가인과 아벨이 하나 되듯 종교와 정치가 완벽한 수수작용을 이룰 때 유엔은 비로소 강대국의 횡포를 끝내고 약소국과 형제처럼 함께 번영하는 진정한 공영의 글로벌 거버넌스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평화대사와 초국가적 평화 네트워크의 구축
아벨 유엔의 원대한 비전을 현실의 기반 위에 실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UPF는 전 세계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을 평화대사(Ambassadors for Peace)로 임명하여 강력한 초국가적 평화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평화대사는 자국의 이기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세속적인 외교관이 아닙니다. 이들은 국경, 인종, 종교의 장벽을 초월하여 위하여 사는 삶이라는 참사랑의 철학에 동의하고 이를 삶으로 실천하는 하늘부모님의 특사들입니다. 오늘날 수백만 명의 평화대사들이 세계 도처에서 갈등과 분쟁을 중재하고 참가정의 가치와 심정문화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특히 참어머님의 영도 아래 UPF는 세계평화정상연합(ISCP),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 세계평화종교인연합(IAPD), 세계평화경제인연합(IAED) 등 사회 각 분야의 전문 연대체를 촘촘히 결성했습니다. 이는 정치, 경제, 학술, 언론, 종교 등 파편화되어 이기적으로 굴러가던 사회의 모든 영역이 톱니바퀴처럼 하나로 맞물려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방향을 향해 정렬되도록 이끄는 거대한 평화의 엔진이자 신통일세계의 실체적 뼈대입니다.
평화대사협의회와 한반도 통일을 향한 실천
거대한 글로벌 거버넌스의 혁신은 내가 딛고 선 지역 사회의 풀뿌리 실천과 하나 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에서는 평화대사협의회가 결성되어 참부모님의 평화 사상을 땀방울로 실체화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평화대사협의회는 화려한 회의실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긍휼의 심정으로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구호 활동, 환경 정화 운동, 다문화 가정 지원 등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앞장서며 지역 사회에 참사랑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평화대사협의회는 복귀섭리의 최종 기착지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북통일운동 국민교육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심한 이념 대립과 남남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다음 세대는 경제적 이유로 통일의 필요성조차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평화대사들은 두익사상을 바탕으로 사상적 혼란을 일깨우고 한반도의 통일이 단순한 정치적 결합이나 경제적 이익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부모님의 섭리를 완성하고 세계 평화의 모세 혈관을 뚫는 거룩한 성업임을 온 국민에게 교육하고 있습니다.
평화대사협의회는 위에서부터의 글로벌 거버넌스 혁신과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통일 운동을 완벽하게 하나로 연결하며 신통일한국과 신통일세계를 앞당기는 가장 뜨거운 실천적 심장으로 고동치고 있습니다.
권상기
2026.07.11
4-4 심정문화와 기술 평준화로 여는 평화세계, 참부모님의 언론·과학·인프라 섭리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총과 칼이 아닙니다. 오늘날 인류의 영혼을 가장 깊숙이 파고들어 파괴하는 것은 바로 문화와 언론입니다. 냉전 시대의 군사적 장벽이 무너진 이후, 세속적인 거대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자극적인 폭력과 퇴폐적인 향락,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여과 없이 조장하며 인간의 영혼과 가정의 가치를 무참히 짓밟고 있습니다. 영적 방어선인 도덕과 문화가 무너진 사회는 단 한 발의 총성 없이도 순식간에 타락의 수렁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타락한 문화의 홍수를 막아낸 언론과 예술 섭리
참부모님께서는 이러한 타락한 문화의 홍수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인류의 병든 영혼을 정화하기 위해 심정문화 창달의 섭리를 진두지휘하셨습니다. 공산주의의 위협과 세속적 자유주의의 타락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 참부모님께서는 언론의 힘으로 세상을 깨우기 위해 일본에 세카이닛포, 미국 워싱턴에 워싱턴 타임스, 중남미에 티엠포스 델 문도, 그리고 한국에 세계일보를 차례로 창간하셨습니다. 이 언론들은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정의 가치와 도덕성 회복, 절대가치를 수호하며 현대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는 시대의 양심이자 등대 역할을 철저히 수행했습니다.
동시에 참부모님께서는 딱딱한 이성과 논리만으로는 타락한 인간의 굳은 마음을 열 수 없음을 아시고, 심정을 가장 아름답게 순화시킬 수 있는 예술 섭리를 전개하셨습니다. 천상의 목소리로 전 세계 국가원수들을 감동시키고 철의 장막을 넘어 공산권에까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리틀엔젤스 예술단, 그리고 서양의 발레에 동양의 효와 심정을 담아내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유니버설발레단의 창설이 바로 그것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언론으로 이성의 오류를 깨우치고, 예술로 얼어붙은 심정을 녹여내어 전 세계의 문화를 하늘부모님을 찬양하는 심정문화의 옥토로 일구어 오신 것입니다.
과학과 종교를 융합한 국제과학통일회의
참부모님의 통일 섭리는 부드러운 문화와 예술을 넘어, 현대 문명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도구인 과학으로 깊숙이 향했습니다. 과학 기술은 인류에게 무한한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절대적인 가치관의 통제를 벗어난 과학은 결국 핵무기로 인류를 파멸의 위협으로 몰아넣었고, 생명 복제와 무분별한 유전자 조작 등으로 인간의 존엄성마저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학의 맹목적인 폭주를 막기 위해, 참부모님께서는 1970년대부터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비롯한 세계 최고의 지성인과 석학들을 모아 국제과학통일회의를 창설하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세계의 지성을 모아놓고 가치관이 결여된 과학은 맹목적이고, 과학이 결여된 종교는 무력하다는 위대한 명제를 선포하셨습니다. 외적 무지를 깨우치는 과학 기술이 인류를 파멸시키는 흉기가 아니라 평화의 도구로 온전히 쓰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이라는 내적 지혜의 절대적인 통제를 받아야 함을 일깨우신 것입니다.
기술 평준화로 실천하는 참사랑의 경제
과학 기술의 발달이 소수의 자본가가 아닌 전 인류의 행복을 진정으로 도모하기 위해서는, 참부모님께서 일찍이 주창하신 기술 평준화의 섭리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오늘날 타락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선진국들은 첨단 기술에 엄청난 특허 장벽을 치고, 그 기술을 무기 삼아 개발도상국을 영구적으로 착취하며 부를 이기적으로 독점하고 있습니다. 하늘부모님의 부모의 심정으로 볼 때, 어느 한 자식은 기술을 독점하여 호의호식하고 다른 자식은 기술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우주적인 죄악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일찍이 독일의 정밀 기계 기술과 일본의 제조 기술을 습득하여 한국의 통일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셨고, 그렇게 피땀 흘려 이룩한 기술을 다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의 가난한 개발도상국에 조건 없이 무상으로 전수하는 위대한 모범을 직접 실천하셨습니다. 이것은 지적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굳게 닫힌 선진국의 이기적인 곳간을 활짝 열어제치고, 가난한 형제 국가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함께 잘살 수 있도록 돕는 실체적이고도 거룩한 공생 경제의 구현입니다.
국경을 허무는 국제평화고속도로 프로젝트
기술 평준화와 함께 신통일세계의 실체적 인프라를 지상에 완성하는 가장 거대한 글로벌 프로젝트가 바로 국제평화고속도로입니다. 참부모님께서는 1981년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에 모인 세계의 지성들 앞에서, 과거 철천지원수 국가였던 일본과 한국을 잇는 한일해저터널, 그리고 냉전의 장벽이었던 아시아와 북미 대륙을 잇는 베링해협 해저터널을 연결하여 전 지구촌을 단 하나의 거대한 교통망으로 묶는 프로젝트를 웅장하게 선포하셨습니다.
이 고속도로는 단순한 콘크리트 도로나 물류 이동의 수단이 아닙니다. 이 거대한 길을 통해 선진국의 물자와 기술 평준화의 혜택이 마치 동맥의 피처럼 가난한 나라의 혈관 구석구석으로 막힘없이 흘러들게 됩니다. 도로가 하나로 연결되면 나라를 가로막던 이기적인 국경선의 의미가 영원히 사라지고, 물자와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며 인종과 문화가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피를 섞게 됩니다. 일본과 한국이 해저터널로 이어지고, 러시아와 미국이 베링해협 터널로 연결될 때, 인류는 비로소 이기적인 국익 투쟁을 영원히 내려놓고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거대한 섭리적 실체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게 됩니다.
심정문화와 과학기술이 완성하는 평화세계
참부모님께서 피눈물로 구상하신 신통일세계는 치밀하고 거대한 현실적 인프라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제과학통일회의를 통해 맹목적인 과학에 숭고한 절대가치를 부여하고, 기술 평준화와 국제평화고속도로를 통해 전 지구촌의 부를 고르게 분배하는 실체적인 공생의 뼈대를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깨우는 언론과 영혼을 달래는 예술 섭리를 통해 인류의 심정을 타락으로부터 지켜내는 심정문화의 방패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섭리의 수레바퀴 안에서 맞물려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인류를 먹여 살릴 외적인 인프라와 사상적 터전이 이토록 탄탄하게 마련되었으니, 이 거대한 지구촌을 정치적으로 화합하게 묶어내고 이끌어갈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자국 이기주의와 패권 다툼으로 병들어버린 현재의 유엔을 근본적으로 혁신하여, 종교적 심정과 형제주의 정치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초국가적 평화 연대를 향한 여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권상기
2026.07.11
4-3 미래세대를 위한 환경 복귀, 참부모님의 해양섭리와 선학평화상이 제시하는 희망
타락한 만물주관권, 신음하는 지구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잿더미로 변해가는 오늘, 인류는 전례 없는 환경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양을 오염시키고 기후 난민은 속출하며, 팬데믹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극단적 이기심과 무분별한 탐욕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창조원리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만물을 사랑으로 주관할 권한, 즉 만물주관권을 세 번째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본래 인간은 따뜻한 사랑으로 만물을 돌보고, 만물은 생명력을 제공하며 인간의 영적 성장을 돕는 완벽한 수수작용의 조화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인간은 자연을 형제나 하늘부모님의 작품이 아닌 약탈과 정복의 대상으로 전락시켰습니다.
하늘부모님의 피땀 어린 창조물인 지구가 처참하게 신음하는 현실은 인간의 타락이 임계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영적 증거입니다. 무자비한 개발과 착취는 창조본연의 질서를 무너뜨렸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미래세대에게 떠넘겨지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찾은 인류 구원의 답, 해양섭리
참부모님께서는 일찍이 무분별한 산업화가 가져올 환경 파괴와 폭발적 인구 증가로 인한 미래 식량 위기를 섭리적 혜안으로 예견하셨습니다. 좁은 육지의 자원은 언젠가 바닥날 것이며, 강대국들이 식량을 무기화하여 약소국을 굶주림으로 통제하는 시대가 올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이에 참부모님께서는 1970년대부터 전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미래 인류를 먹여 살릴 궁극적 대안은 바다에 있다고 선포하시며 해양섭리를 직접 개척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알래스카 코디악의 영하 수십 도 추위 속에서, 남미의 거친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참부모님께서는 직접 작은 배를 타고 그물을 던지셨습니다.
이것은 결코 취미나 단순한 어업이 아니었습니다. 다가올 전 지구적 식량 위기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바다의 무한한 자원을 개발하고, 수산 양식 기술과 고단백 식량을 연구하여 굶주리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빈민들에게 대가 없이 나누어주기 위한 참사랑의 투쟁이었습니다. 참부모님의 해양섭리는 단지 육적 식량을 구하는 차원을 넘어 타락한 만물주관권을 복귀하여 창조본연의 심정을 회복하는 거룩한 영적 의식이었습니다.
만물과 심정으로 하나 된 참사랑의 모범
참부모님께서는 남미의 대습지 판타날과 아마존 강 유역을 탐사하시며 그곳에 서식하는 희귀 동식물들을 어루만지셨습니다. 모기떼와 독충이 들끓는 험지에서도 불평 없이 이곳은 하늘부모님께서 잃어버린 인류를 위해 남겨두신 마지막 에덴동산의 표본이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만물을 단순한 물질이나 도구로 보지 않으시고 그 숨결 속에 깃든 하늘부모님의 창조의 수고를 직접 느끼셨습니다. 낚시를 하실 때도 물고기와 심정적 대화를 나누셨고,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만물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잡은 물고기를 통해 굶주린 인류를 먹여 살릴 수 있음에 눈물로 감사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러한 참부모님의 생애는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명백한 섭리적 메시지를 던집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정치적 환경 운동이 아니라 만물 속에 깃든 창조주 하늘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잃어버린 만물주관권을 착취가 아닌 참사랑으로 복귀하는 가장 숭고한 신앙적 실천입니다.
미래세대를 향한 선물, 선학평화상
참부모님의 눈물겨운 비전은 참어머님에 의해 더욱 거대한 글로벌 평화 운동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 평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된 선학평화상입니다. 기존의 세계적인 상들이 과거와 현재의 정치적 업적에 집중했다면, 선학평화상은 철저히 미래세대의 생존과 번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참어머님께서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미래세대가 깨끗한 환경 속에서 굶주리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는 것이라며 미래세대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숨은 의인들을 발굴해 오셨습니다. 기후 변화 위기로 수몰되는 섬나라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린 아노테 통 키리바시 전 대통령, 식량 안보를 위해 평생을 바쳐 청색혁명을 이끈 모다두구 굽타 박사, 아프리카의 난민과 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운 운동가와 의료진 등에게 거액의 상금과 함께 이 상을 수여하셨습니다.
선학평화상은 단지 상을 주는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미래 인류의 생존권과 지구 환경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리가 마땅히 실천해야 할 가장 숭고한 공의이자 부모의 심정임을 전 세계 지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인류 양심의 거룩한 등불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퓨어워터, 세상을 정화할 미래세대
참부모님의 해양섭리와 선학평화상이 지향하는 궁극적 지점은 타락으로 얼룩진 인류 문명을 맑게 씻어내어 하늘부모님과 효정으로 하나 된 미래세대에게 무사히 물려주는 데 있습니다. 참어머님께서는 타락의 탁류와 상관없이 맑고 순결한 미래세대를 가리켜 퓨어워터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기심으로 병든 지구촌을 치유하고 하늘부모님의 직접주관권 내에 2세권이 살아갈 실체적 환경을 복귀하는 천주적 정화 운동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완수해야 할 엄중한 시대적 사명입니다. 이 장엄한 역사는 맑은 물방울들이 모여 강을 이루고 끝내 거대한 바다로 흘러가듯, 하늘과 완전히 하나 된 퓨어워터들의 효정으로부터 출발하여 천일국의 주역인 미래세대의 가슴속으로 멈춤 없이 이어져야 합니다.
참어머님께서는 선학장학재단, 천주평화사관학교, 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 등을 통해 미래 지도자 양성에 아낌없이 투입하시며 창조이상을 영원히 실체화할 심정적 계승의 길을 열어 오셨습니다. 우리는 참부모님께서 거친 바다와 험준한 오지에서 인류를 위해 흘리신 눈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인간의 탐욕을 내려놓고 일상의 자연부터 퓨어워터의 맑은 심정으로 아끼며, 참사랑의 전통을 이어받은 미래세대가 지구적 위기를 해결할 당당한 주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굳건한 반석을 놓아주어야 합니다. 하늘의 책임을 짊어진 효정의 역군들이 섭리의 바다에서 힘차게 일어설 때, 신통일세계의 아침은 결코 지지 않는 찬란한 승리의 빛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권상기
2026.07.11
4-2 인류가 꿈꾼 이상 공동체, 키부츠부터 포콜라레까지의 실험과 한계
인류는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완전한 평화와 평등의 공동체를 꿈꾸어 왔습니다. 하늘부모님을 중심으로 인류가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공생·공영·공의의 세계는 단순한 철학적 이상이 아니라, 인간 본심 깊은 곳에 새겨진 강렬한 영적 갈망입니다. 실제로 근현대사에는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와 폭력적인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참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하려 했던 눈물겨운 실험들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비록 완전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공생·공영·공의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위대한 맹아였습니다.
사막에 세운 평등의 꿈, 키부츠의 빛과 그림자
20세기 초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세운 집단 농장 공동체 키부츠는 공생 경제의 가장 철저한 실험이었습니다. 척박한 사막을 개간하며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원칙을 실현했습니다. 사유재산을 전면 폐지하고 자녀 양육과 교육을 공동체가 전담했으며,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계급 없는 평등 사회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초기 키부츠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형제애적 연대를 통해 엄청난 경제적 성공과 국가 재건의 기적을 일구어 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뼈아픈 위기에 봉착합니다. 이들의 평등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영성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시온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인간 중심 이념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대가 교체되고 이스라엘 사회가 자본주의로 급격히 편입되자, 영적 동력을 상실한 후손들은 이기심과 개인주의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오늘날 대다수 키부츠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기업화되는 등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는 절대 중심이 없는 제도적 공생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입니다.
초대 교회의 영성을 되살린 브루더호프
키부츠의 세속화가 보여준 한계를 영적으로 극복해 낸 곳이 바로 기독교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브루더호프 공동체입니다. 1920년 독일에서 에버하르트 아놀트에 의해 시작된 이들은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초대 교회의 절대적 사랑을 현실에서 그대로 살아내고자 했습니다.
브루더호프는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하며 자동차부터 수입까지 모든 것을 공동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이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 신앙입니다. 특히 브루더호프는 현대 사회의 이혼과 성적 타락을 철저히 배격하고, 남녀의 순결과 평생의 헌신을 약속하는 가정을 공동체의 가장 거룩한 기초로 삼고 있습니다. 함께 땀 흘려 일하고 매일 저녁 모여 하늘을 찬양하며 늙고 병든 형제 자매를 끝까지 책임지는 이들의 모습은 참사랑이 일상화된 심정문화세계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영적 오아시스 역시 섭리적 한계를 지닙니다. 이들은 폭력적인 세상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외부 세계와 철저히 선을 긋고 고립된 평화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늘부모님의 뜻은 깊은 산속에 소수 의인들만의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80억 인류 전체의 구조적 죄악을 깨부수고 온 세상을 천일국으로 변혁시키는 폭발적인 구원 섭리에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증명된 연대의 힘, 몬드라곤
거대한 자본주의 시장의 한복판에서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기적입니다.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아리에타 신부에 의해 설립된 몬드라곤은 오늘날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규모의 협동조합으로 성장했습니다.
이곳은 자본이 인간을 지배하는 주식회사와 달리 인간이 자본을 주관합니다. 최고 경영자와 말단 노동자의 임금 격차를 극히 제한하여 경제적 평등을 실현하고, 모든 노동자가 조합원으로서 1인 1표의 동등한 투표권을 행사하여 회사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공영의 형제주의 정치를 기업 구조 안에 완벽하게 구현했습니다. 한 부서가 경영 위기에 처하면 해고하는 대신 다른 부서로 재배치하는 눈물겨운 연대를 실천합니다.
몬드라곤은 인간의 이타적 연대와 민주적 구조만으로도 탐욕스러운 글로벌 자본주의 시장을 압도할 수 있음을 입증한 놀라운 섭리적 승리입니다. 다만 이 거대한 구조적 틀 안에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는 하늘의 심정을 불어넣어 세속화를 방어할 것인가는 이들 역시 고민해야 할 궁극적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심정으로 세계를 하나로, 포콜라레의 공유경제
제도와 이념을 넘어선 가장 강력한 영적 경제적 연대가 바로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가톨릭 평신도 운동 포콜라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 속에서 끼아라 루빅에 의해 창설된 이 운동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인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를 궁극의 목표로 삼습니다.
이들은 국경과 종교의 벽을 넘어 형제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공의의 영성을 폭발시켰습니다. 특히 1991년 빈부격차의 참상을 목격한 끼아라 루빅은 기업가들에게 이윤의 3분의 1은 빈곤층 구제에, 3분의 1은 인간을 위하는 문화 양성에, 나머지 3분의 1만을 기업 재투자에 사용하자는 공유경제를 제창했습니다. 놀랍게도 전 세계 수백 개의 기업들이 이 뜻에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기업 활동을 곧 참사랑의 실천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포콜라레의 성취는 제도를 법으로 강제하는 공산주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하늘을 향한 심정이 폭발할 때 자발적인 공생의 기적이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음을 증명한 위대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실험을 넘어 천일국의 실체로
키부츠의 경제적 평등, 브루더호프의 영적 순결과 가정, 몬드라곤의 민주적 연대, 포콜라레의 심정적 공유경제는 인류가 하늘부모님의 창조이상을 더듬어 찾아온 피눈물 나는 섭리의 발자취이자 공생·공영·공의의 훌륭한 맹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위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지구촌은 여전히 전쟁과 분열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도의 혁신이나 윤리적 헌신만으로는 인간의 뼛속 깊이 각인된 사탄의 유전자, 즉 원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의 독뿌리를 근원적으로 도려내지 않는 한, 아무리 완벽한 제도도 철저한 이념도 언젠가는 타락성의 위협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따라서 이 모든 인류의 고귀한 실험들이 일시적인 성공이나 소수의 피난처로 끝나지 않고 전 우주적인 천일국으로 영원히 안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류를 사탄의 핏줄에서 하늘의 핏줄로 근원적으로 수술해 주실 참부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참부모님이 열어주신 축복결혼을 통해 혈통을 전환한 참가정들이 몬드라곤처럼 공영의 일터를 가꾸고, 포콜라레처럼 부를 나누며, 브루더호프처럼 절대 순결의 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켜 나갈 때, 비로소 인류의 낡고 병든 역사는 종언을 고하고 하늘부모님이 직접 치리하시는 영원한 평화의 실체 세계가 이 지상 위에 웅장하게 건설될 것입니다.
권상기
2026.07.11
4-1 복귀섭리로 본 역사의 발전 단계: 투쟁을 넘어선 공생·공영·공의의 도래
유물사관이 그린 역사의 종착점, 그 치명적 허점
인류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문명의 수레바퀴가 굴러온 이 긴 여정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19세기 카를 마르크스는 이 질문에 대해 매우 명쾌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를 물질적 생산 수단의 소유를 둘러싼 계급 투쟁의 연속으로 파악하며, 유물사관에 기초한 역사 발전 5단계설을 주장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평등했던 원시 공산사회에서 출발하여 고대 노예제 사회와 중세 봉건제 사회를 거쳐 자본주의 사회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내부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붕괴하며, 프롤레타리아의 폭력 혁명을 통해 완전한 평등을 구현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착취와 빈곤에 시달리던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역사는 이 달콤한 약속이 수천만 명을 학살한 전체주의의 참극으로 귀결되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조차 이 이론을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을까요? 그 이유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진정한 역사 발전의 형식을 교묘하게 모방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주도권을 쥔 사탄은 하늘부모님께서 펼치시려는 복귀섭리의 발전 공식을 미리 도용하여, 무신론적 가짜 역사를 전개했던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본 역사의 단계들은 실제 섭리를 왜곡하여 모방한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복귀섭리로 본 진정한 역사 발전의 궤적
타락으로 인해 영적 무지와 육적 무지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늘부모님은 멈추지 않고 섭리를 전개해 오셨습니다. 내적으로는 종교를 세워 이기적인 마음을 닦게 하셨고, 외적으로는 과학과 경제를 발전시켜 파괴된 환경을 복구해 오셨습니다. 이 두 갈래의 발전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시대마다 의로운 중심인물을 세워 하늘편의 주권을 점진적으로 넓혀 오셨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하늘편 씨족사회입니다. 사탄을 중심한 원시 공동사회가 분열하고 타락의 늪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하늘의 뜻을 받드는 이스라엘 씨족사회를 세우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도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70문도를 중심으로 핍박 속에서 기독교 씨족사회를 형성하며 새로운 구원의 기반을 마련하셨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하늘편 봉건사회입니다. 씨족이 번성하여 부족이 되면, 사탄 세계의 침범을 막기 위해 튼튼한 영토와 강력한 주종 관계로 뭉친 방어선이 필요해집니다. 구약의 사사 시대나 신약 이후 중세 유럽의 기독교 봉건사회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 백성들은 영주와 성직자에게 순종하며 사탄의 외적 침입을 막아내는 신앙적 결속력을 다졌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하늘편 통일군주사회입니다. 흩어진 봉건 영지들을 통합하여 광대한 영토와 강력한 국가 주권을 세워야만,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온 세계가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기반이 완성됩니다. 구약시대 다윗과 솔로몬 왕으로 이어지는 통일 왕국시대나, 중세 교황 레오 3세가 카롤루스 대제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 이룩했던 기독왕국시대가 바로 이 단계입니다.
군주제의 타락과 아벨형 민주주의의 필연적 탄생
그러나 통일왕국의 군주와 교황들은 세속적 권력의 탐욕에 눈이 멀어 섭리적 사명을 망각했습니다. 하늘부모님께서 메시아를 모시기 위해 세워주신 절대 왕정이, 오히려 백성들의 신앙과 자유를 짓밟고 권력을 독점하는 전제군주제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부패한 왕조와 독재 치하에서는 결코 인류를 해방할 참부모님을 자유롭게 모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군주사회를 철저히 깨뜨리고, 국가의 주권을 백성 개개인에게 돌려주어 그들이 스스로의 양심과 자유의지로 다가올 메시아를 찾아 모실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를 준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 혁명은 단순한 이권 투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부패한 가인적 군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피 흘려 싸운 아벨형 민주주의의 탄생이었습니다. 인류는 이 민주주의의 터전 위에서 마침내 억압받지 않고 참부모님의 진리를 듣고 스스로 결단할 수 있는 언론과 양심의 자유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하늘편 사회주의의 열망
그러나 하늘부모님의 구원 섭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달성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아벨형 민주주의는 독재자를 몰아내고 자유를 쟁취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자유를 하나로 묶어줄 참된 중심을 잃어버렸기에 오늘날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끝없는 당파 싸움의 온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이룩한 자본주의 역시 인류에게 거대한 물질적 부를 안겨주었으나, 이웃을 형제로 여기지 않는 탐욕 탓에 승자독식과 빈부격차의 지옥을 낳았습니다.
하늘부모님의 따뜻한 심정으로 볼 때, 어느 자식은 부를 독점하여 호의호식하고 어느 자식은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는 냉혹한 자본주의의 현실은 결코 창조본연의 이상이 아닙니다.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깊은 본심은 정치적 자유를 넘어, 80억 인류 모두가 굶주림과 차별 없이 풍요를 누리는 경제적 평등 체제를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인류의 이 본심적 갈망이 도달해야 할 다음 단계가 바로 하늘편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이러한 이타적 본심이 깨어날 것을 미리 알고, 무신론적 유물론으로 포장된 가짜 사회주의인 공산주의를 앞질러 세워 세상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공생·공영·공의로 완결되는 역사의 최종 목적지
인류 역사는 가난했던 원시 공동사회로 퇴보하는 것도,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무한 경쟁에 머무르는 것도 아닙니다. 수천 년 역사의 모든 투쟁이 마침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는 좌우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하는 두익사상, 즉 하나님주의의 안착입니다. 종교와 과학,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해 온 역사의 수레바퀴는 마침내 참부모님이 주창하신 공생·공영·공의의 섭리적 비전 안에서 완전한 통일의 꽃을 피웁니다.
이 비전은 단순히 외적인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낳은 경제적 착취와 빈부격차를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으로 녹여내어 만물이 본연의 주인을 찾아 생명력을 회복하는 경제적 조화인 공생을 이루고, 권력 쟁취를 위해 피 터지게 싸우던 투쟁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 모든 국가와 백성이 형제애로 통치에 참여하는 정치적 화합인 공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기주의와 타락성으로 얼룩진 인류의 도덕을 절대적인 위하는 삶으로 정화하여 윤리적 심정문화인 공의를 이룩하는 여정입니다.
이는 과거의 모든 낡은 체제가 품었던 선한 갈망들만을 섭리적 용광로에 녹여 역사 발전의 찬란한 종착역으로 빚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지상천국이 현실의 토양 위에 완전한 닻을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섭리적인 마지막 고개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탄이 만들어낸 가짜 평등의 세계, 무신론적 유물론으로 무장하고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 했던 공산주의와의 우주적 최후 결전이었습니다. 참부모님께서는 이 하늘편의 이상세계가 안착하기 직전 붉은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세계를 지켜내시고, 나아가 그 원수들마저 칼이 아닌 참사랑의 진리로 품어 굴복시키셨습니다.
권상기
2026.07.11
3-6 신통일세계의 윤리 비전: 절대가치의 회복과 ‘공의(共義)’의 심정문화세계
가치관 붕괴 시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대 사회는 놀라운 과학기술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외피 아래에는 치명적인 균열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바로 가치관의 붕괴입니다. 신을 잃어버린 세속 사회는 영원불변하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며, 모든 것을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극단적인 도덕적 상대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 잣대가 횡행합니다. 인류의 영혼을 이끌어야 할 종교조차 절대가치를 상실한 채 맹목적인 배타성에 갇혀 분쟁과 테러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경제 제도를 만들고, 완벽한 정치 체제를 구축한들,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올바른 윤리와 도덕적 나침반이 서 있지 않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하늘부모님이라는 공통된 선의 절대 기준이 무너진 사회에서는, 제아무리 촘촘한 법과 감시망을 동원해도 끝없이 솟아나는 인간의 탐욕과 범죄를 결코 막아낼 수 없습니다. 외적인 제도의 완성은 반드시 내적인 심정과 윤리의 완성으로 뒷받침되어야만 합니다.
공의주의와 효정: 영원한 절대가치의 회복
신통일세계의 세 번째 비전인 공의주의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절대 가치를 인류의 가슴속에 굳건히 세우는 위대한 윤리적 선언입니다. 이 공의주의를 작동시키는 가장 깊은 뿌리이자 무한한 에너지가 되는 것이 바로 효정입니다.
우주의 근본 질서는 절대가치인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입니다. 이 절대가치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심정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하늘부모님을 나의 친부모로 모시고 눈물로 위로해 드리고자 하는 절대적인 자녀의 심정, 그것이 바로 효정입니다. 이 효정의 뿌리가 내려져야만 형제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진정한 평화가 싹트게 됩니다.
서구 철학이 말하는 정의가 단순히 개인 간의 권리와 의무, 법적인 잘잘못을 따지는 차가운 수평적 개념이라면, 천주적인 공의는 만민의 부모이신 하늘부모님을 향한 뜨거운 효도의 심정이 이웃과 형제애로 웅장하게 확대된 개념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하면, 부모가 굳이 회초리를 들지 않아도 자식은 스스로 형제와 다투지 않고 맛있는 것을 양보하며 나눕니다.
하늘부모님을 향한 눈물겨운 효정이 내 안에 바로 설 때, 비로소 타인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봉사하는 위하여 사는 삶이 억울한 의무가 아닌 벅찬 기쁨이 됩니다. 효정은 모든 윤리의 수직적 중심축이며, 이 축이 바로 설 때 비로소 사회적 공의라는 수평적 평화 질서가 완벽하게 완성됩니다.
참가정과 4대 심정권: 사랑의 학교
공의주의 윤리와 효정의 절대가치는 학교의 교과서나 차가운 지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참가정이라는 따뜻한 심정의 학교, 실천의 훈련장에서만 온전히 길러집니다.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하늘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체적으로 체험하고 체휼하는 유일하고도 거룩한 장소입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정 안에서 4대 심정권을 거치며 사랑의 품격을 완성해 나갑니다. 먼저 자녀로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 그 은혜에 감사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고자 하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효의 심정을 배웁니다. 다음으로 형제자매 사이에서 부모의 사랑을 중심 삼고, 나와 다른 형제들과 부대끼며 맛있는 것을 나누고 양보하며 위로하는 끈끈한 우애와 사회성을 다집니다.
이후 부부로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만나 뼈와 살이 하나되는 참사랑을 나누며, 하늘부모님의 창조성을 이어받아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준비합니다. 마침내 부모가 되어 낳은 자식을 위해 밤을 새우고 내 살과 피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절대사랑, 조건 없는 헌신을 통해 비로소 우주를 품으시는 하늘부모님의 애달픈 심정을 실체로 체휼하게 됩니다.
이 4대 심정권을 거치며 모난 이기심이 깎여나가고 온전히 완성된 효정은, 훗날 사회로 나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충성심이 되고, 온 인류를 긍휼히 여기며 구원하는 성인의 거룩한 박애 정신으로 세계화됩니다. 내 작은 가정에서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효정이 곧 전 우주를 품어 안는 공의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효정의 조직 문화: 경영 현장에서의 실천
공의의 윤리와 효정의 철학은 종교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치열한 조직 관리와 기업 경영의 현장에서도 가장 강력한 시너지와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특히 조직의 경영 지침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핵심적인 프로젝트 기획안을 도출해야 하는 워크숍이나 회의 현장에서, 효정의 철학은 혁신적이고 실천적인 지침이 됩니다.
효정적 리더십에서 리더는 지위를 무기로 부하 위에 군림하며 명령하는 권력자가 아닙니다. 하늘부모님을 대신하여 구성원들의 고충을 듣고, 그들의 영적·물적 성장을 사랑으로 돌보고 책임지는 부모의 심정을 지녀야 합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는 동기의 공의성을 점검합니다. 이 일이 나의 승진이나 우리 부서만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전체 조직의 발전과 하늘의 뜻을 기쁘게 해드리는 효도의 길인지를 가장 먼저 준엄하게 묻습니다.
회의에서 제안된 동료들의 안건을 평가할 때는 형제주의적 협력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아이디어를 깎아내려야 할 라이벌의 것으로 보지 않고, 형제자매를 돕는 마음으로 그의 제안을 경청하며, 서로의 기획안이 가진 장점을 융합하고 단점을 덮어주어 조직 전체를 살리는 최상의 결과물을 함께 도출해 냅니다. 이처럼 거창한 정책뿐만 아니라, 매일의 경영 지침 수립과 작은 프로젝트 기획안 하나를 낼 때에도 효정이라는 절대가치의 기준을 적용할 때, 기업과 조직은 차가운 이익 집단을 넘어 사회에 따뜻한 빛을 비추는 거룩한 심정적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심정문화세계의 도래: 천일국의 완성
이로써 신통일세계의 웅장한 3대 비전이 완벽하게 결속됩니다. 물질의 이기적 독점을 끝내고 형제와 나누는 공생의 경제, 다수결의 횡포와 권력 투쟁을 마감하고 참된 섬김으로 화합하는 형제주의 정치인 공영, 그리고 하늘부모님을 향한 효정을 깊은 뿌리로 삼아 참사랑의 절대가치를 굳건히 세운 공의의 윤리가 하나로 어우러집니다.
이 위대한 삼박자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인류는 무지와 거짓, 피비린내 나는 투쟁의 역사를 영원히 끝내고 마침내 하늘부모님을 모시고 기쁨으로 노래하며 살아가는 심정문화세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차가운 이데올로기의 상처와 꺾인 인류의 두 날개는, 이제 이 뜨거운 효정의 용광로 속에서 말끔히 치유되어 우주로 비상할 것입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한반도에서 솟아오른 두익사상의 찬란한 빛이 전 세계의 어둠을 몰아내며 비추고 있습니다. 오직 참부모님을 통해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가 한 가족으로 얼싸안는 영원한 지상천국, 천일국의 눈부신 실체가 마침내 우리 눈앞에 그 장엄하고도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권상기
2026.07.09
3-5 신통일세계의 정치 비전: 권력 투쟁을 넘어 선 ‘공영(共榮)’의 형제주의
권력 투쟁으로 얼룩진 현대 민주주의의 그늘
절대 군주제와 독재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민주주의는 인류 정치사에서 가장 큰 진보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숙했다고 평가받는 현대 민주주의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또 다른 형태의 투쟁과 분열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대의 선거는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화합의 장이 아닌,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상대방을 헐뜯고 짓밟는 패권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겉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51%의 다수가 49%의 소수를 무시하고 권력과 이권을 독점하는 다수의 횡포를 낳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념과 지역으로 파벌을 나누고, 다음 선거 승리만을 위해 끊임없이 대립하며 보복극을 펼치는 현대 정치의 모습은, 인류가 본래 지향해야 할 화합과 공존의 가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절대적 가치의 중심을 잃어버린 민주주의는 결국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욕을 극대화하는 세속적 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공영주의가 제시하는 형제주의 정치의 원리
신통일세계의 정치 비전인 공영주의는 만인이 함께 뜻을 모아 국정에 참여하는 공동정치의 형식을 띱니다. 외형적으로는 대의민주주의와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작동 원리와 근본적인 심정의 차원에서 완전히 다른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공영 정치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이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투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 있습니다. 형제가 서로 다투어 권력을 쟁취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참부모를 중심으로 형제자매가 화합하여 이웃을 위해 봉사할 대표를 기쁜 마음으로 추대하는 것이 참된 공영 정치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공영 정치는 세 가지 핵심적인 차이를 통해 기존 민주주의와 구별됩니다. 첫째, 입후보자들의 관계성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선거에 나서는 후보들은 권력을 다투는 정적이 아니라, 참사랑을 터로 하고 메시아를 인류의 참부모로 모시는 가족적 형제자매입니다. 따라서 상대를 짓밟아 내가 당선되려는 이기적인 투쟁심 자체가 원천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둘째, 출마의 동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입후보자들은 자신의 헛된 명예나 권력욕에 따라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일상과 조직 속에서 보여준 높은 덕망과 헌신적인 섬김을 지켜본 이웃들의 자발적이고 존경 어린 천거에 의해 후보로 겸허히 추대됩니다.
셋째, 투표와 추첨의 거룩한 결합이 이루어집니다. 선거는 타락한 인간의 다수결이나 여론몰이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습니다. 투표 방식의 토대 위에,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맛디아를 선출할 때처럼 엄숙한 기도와 섭리적 의식이 수반되는 추첨 방식이 결합되어 최종적으로 치러집니다. 이는 인간적인 파벌 싸움과 선거 부정을 원천 차단하고, 최종 의사결정에 하늘의 뜻이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내어드리는 가장 겸허하고 신성한 참정권의 행사입니다.
천부주의를 중심한 인류 한 가족의 통치 체계
공영주의의 공동정치는 분열된 이익 집단들의 각축전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하나로 통일된 메시아 왕국의 정치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한 진정한 화합의 정치가 됩니다. 하나님을 실체적으로 대신하는 메시아를 참부모로 모시고, 만인은 그 부모의 참사랑을 핏줄로 이어받은 형제자매의 입장에서 국가와 세계를 화기애애하게 경영합니다.
부모 앞에서는 잘난 자식도 못난 자식도 모두 품어주어야 할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이러한 공동정치는 인류의 참부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형제를 위한, 형제에 의한, 형제의 정치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좁은 의미의 세속적 민주주의를 훌쩍 뛰어넘어, 우주의 창조주인 하늘부모님을 진정한 부모로 모시는 천부주의를 중심한 완벽한 형제주의 정치로 승화됩니다.
일상 속에서 실현되는 공영의 원리
형제주의 정치의 비전은 비단 국가 차원의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인체의 위장과 심장이 뇌의 명령에 따라 온몸을 살리기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하듯,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조직 관리와 의사결정의 현장에서도 이 공영의 원리는 사위기대의 형태로 실체화되어야 합니다.
기업이나 조직의 관리를 위해 새로운 경영 지침을 세우는 워크숍을 준비하거나, 핵심적인 조직 프로젝트 과제를 기획하여 회의에서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봅시다. 만약 부서 이기주의를 내세워 내 기획안만이 무조건 채택되어야 한다고 고집하거나, 상대방의 평가 자료를 깎아내려 나의 실적만을 돋보이게 하려 한다면 그것은 낡은 패권 정치의 축소판일 뿐입니다.
하지만 공영의 원리가 적용된 회의장에서는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워크숍 자료나 여러 프로젝트 제안서들을 평가할 때, 나의 승진과 실적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 안건들이 조직 전체의 공적인 목적을 어떻게 조화롭게 실현할 것인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습니다.
동료를 밟고 일어서야 할 경쟁자가 아닌 한 식구로 여기며 그의 아이디어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부족한 점을 내 능력으로 보완하여, 그 융합된 최종 프로젝트의 성과를 내 개인의 공로가 아닌 조직 전체의 공영과 기쁨으로 돌리게 됩니다. 가장 높은 직급에 있으면서도 만인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땀 흘리는 섬김의 리더십과, 이웃의 의견을 존중하고 융합하는 공영주의의 원리가 조직의 구석구석에 스며들 때, 바로 그 회의실과 사무실이 가장 작은 실체적 천일국이 됩니다.
이기적 독점을 끝낸 경제적 토대와 파벌 투쟁을 마감한 형제주의 정치의 굳건한 기반 위에,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절대가치로 영원히 묶어줄 궁극의 정신문화가 필요합니다. 신통일세계 비전은 공생, 공영, 그리고 공의의 윤리라는 세 기둥 위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권상기
2026.07.09